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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가 불러오는 기억

우리는 지금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믹스커피를 마시면,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으로 생긴 내 자리가 생각난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앞날에 도움이 될까 보다는 무슨 일을 해야 더 멋있어 보일까 가 중요했던 젊은 날.


반듯한 정장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책상 위에 서류더미를 무심한 듯 툭 던지곤 360도 회전하는 사무용 의자에 몸을 파묻고 앉아 머리가 아픈지 두 손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는 광고 속 한없이 멋있어 보이는 커리어 우먼처럼. 


광고 속 그 샤프한 여자는 부하직원이 가져다주는 약을 마시고는 이 세상 능력은 자신이 모두 가졌다는 듯 눈부시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도 변변치는 않지만 사회라는 하나의 세상에 내 거라고 할 수 있는 조그만 자리가 생겼을 때, 내 앞날에 꽃길만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비록 채 여덟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 하루 종일 다른 번역가가 번역한 원고를 감수하고 교정하는 일을 할 뿐이었지만, 푸른 새벽을 가르고 도착한 사무실 내 자리에서 방금 끓인 달달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창백한 모니터 전원을 켤 때의 그 기분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물론 그 뒤의 내 삶의 행로는 나처럼 아등바등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하나씩, 때로는 무더기로 해치우듯 해결하며 사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한 놀이터에서 그만한 아이들과 그만그만하게 도우며 싸우며 웃으며 울며 뒹굴다가 흙먼지를 털고 일어나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가는 나날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따금씩 그때 마신 달달한 믹스커피가 생각이 나는 건,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끓인 믹스커피에서 그때의 정경이 떠오르는 건, 그 시절이 아니고서야 각인될 수 없는 향기가 이미 내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떠오르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푸른 새벽에 창백한 모니터 화면을 켜면서 마셨던, 서너 시간의 업무처리 뒤에 무거운 머리로 복도 끝의 창가에 서서 마셨던, 식후 동료들과 주변 공원을 어슬렁 거리면서 마셨던, 마감이 있는 날 언제나처럼 야근을 하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과 아직 한참 남은 교정 원고 사이에서 조급한 마음으로 마셨던, 그리고 추운 겨울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호호 불어 마셨던 그날의 믹스커피. 


그런 날의 믹스커피를 손에 들고 마실 때면 작지만 찬란했던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조우하며 안타까운 미소를 짓는다. 조금은 확장이 됐지만 그만큼 빛이 바랜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를 그립게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이해하고 있을까?


믹스커피의 묵직한 달달함이 혀끝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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