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의 방귀 주머니 #최종화

난쟁이의 종이꽃




그날 밤 난쟁이들은 고마 할머니의 생일을 치르기로 했어요. 할머니의 생일이 되려면 아직 열흘 하고도 세 밤을 더 자야 했지만, 다음 날 난쟁이들의 방귀가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생일을 앞당기기로 한 거예요.

난쟁이들은 반딧불이 아름답게 비추는 꽃밭으로 가서 서둘러 종이꽃을 꺾어 광장을 장식했어요. 고마 할머니의 가슴에 안겨줄 꽃다발도 잊지 않고 만들었지요. 한편 아낙들은 아기를 등에 업은 채 생일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했어요. 고마 할머니도 아낙들 틈에 섞여 옛 솜씨를 발휘했답니다.

잔치 준비가 모두 끝나자 광장은 다시금 난쟁이들의 활기찬 목소리로 가득 찼어요. 난쟁이들은 10년을 묵혀둔 꿀 술을 술잔에 가득 채우며 축배를 들었지요. 모두 마음속에 걱정이 가득했지만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사라질까 두려워 내색하지 않고 잔치를 즐겼어요. 광장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은 고마 할머니도 두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훔쳐냈어요. 난쟁이 마을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난쟁이들이 동굴 앞에 모여들었어요. 모두 지난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지만, 질서 있게 동굴 바위벽 앞에 서서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요. 바위벽 틈새에 방귀를 다 뀐 난쟁이들은 묵묵히 마을로 돌아가 주변을 정리했어요. 집안을 청소하고 대문 밖을 빗자루를 쓸었지요. 어떤 난쟁이들은 정성껏 가꾼 텃밭에 나가 벌레 먹은 열매를 골라내거나, 쭉정이를 솎아냈어요. 그러는 사이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답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마을을 감쌌어요.

고마 할머니의 말대로 마지막 난쟁이까지 방귀를 다 뀌는데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꼬박 걸렸어요. 난쟁이들은 참을성 있게 차례가 마지막인 난쟁이를 기다렸다가 다시 마을 광장에 모였어요. 그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사를 가족끼리 친구끼리 나누었답니다. 난쟁이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손을 꼭 잡았어요. 그러는 동안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나 귀를 쫑긋 세웠지요. 하지만 땅 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난쟁이들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난쟁이들의 머리 위에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작게 들리는가 싶더니 곧이어 땅이 무너지기라도 할 듯 요동을 치기 시작했어요. 난쟁이들은 서로를 꼭 부둥켜안은 채 눈을 질끔 감았어요. 난쟁이 마을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땅이 고요해지기를 기다렸지요.

한편 땅 위에서는 일대 소동이 일어났어요. 바위산 아래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어디선가 풍겨오는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렸지요. 냄새는 처음에는 아주 희미하게 나더니 점점 숨이 막힐 정도로 지독해졌어요. 사람들은 바위산을 뒤돌아보았어요. 푸른 초원이 바위산과 맞닿아 있는 그곳에 뭔가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어요. 사람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바위산 밑자락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답니다.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르고, 두더지가 굴 밖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보였어요. 사람들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랐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어지지 않아 두 손으로 눈을 비볐어요. 땅이 요동을 치면서 초원을 향해 갈라지고 바위산 꼭대기가 우르르 울리며 진동했어요. 그제야 무슨 일인지 알아차린 사람들은 손에 들고 있던 곡괭이며 삽을 모두 내던진 채 초원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답니다.

“화산이 폭발한다!”

“지진이다!”

사람들은 갈팡질팡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어요. 초원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도 바위산이 울리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엄마들은 아이들을 품 안에 안고, 노인들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때였어요.

우르르 쾅쾅, 펑!


바위산 꼭대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어요. 그리고 곧이어 빨간 용암이 흐르면서 사방으로 돌덩이가 떨어졌어요. 용암은 바위산 밑에서도 새어 나왔답니다. 붉은 용암과 함께 지독한 냄새가 풍겼어요. 땅이 갈라지면서 집과 밭이 뒤엎어졌지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울고 노인들은 넋을 잃은 채 바위산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았지요. 남자들은 그런 어른들을 등에 업고 뛰었어요. 빨간 용암은 칠일 밤낮 동안 계속 흘러나왔어요. 하지만 지독한 냄새는 용암이 멈춘 뒤에도 여든 아흐레 밤이나 계속되었답니다. 이제 초원에 사람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요.


난쟁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땅 위의 소란이 멈추기를 기다렸어요. 혹시라도 용암이 난쟁이 마을에도 흘러들어올까 걱정되어 음식을 나르고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는 일 외에는 마을 광장에서 꼼짝하지 않았지요. 다행히 난쟁이 마을은 천장 몇 군데가 무너지고 물길이 막힌 것을 빼고는 크게 화를 입지 않았어요. 물길이 막혔으니 그동안의 농사가 모두 헛일이 되었지만 마을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답니다.

난쟁이들은 화산이 폭발하는 동안 땅 위에서 일어난 소란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아이를 찾을 때는 난쟁이들도 눈물이 났지요. 하지만 난쟁이들도 마을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칠일 밤낮이 지나고 바깥세상이 조용해지자, 난쟁이들은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어요. 그리고 언제나처럼 집 안팎을 청소하며 화산과 지진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밭을 일구고 아픈 난쟁이들을 돌보며 하루를 보냈답니다. 난쟁이들은 그 뒤로도 동굴 바위벽 틈새에 방귀를 뀌었어요. 혹시라도 마을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그 일만은 소홀히 하지 않았지요. 바위산 아래 난쟁이들은 가끔씩 다른 난쟁이 마을에서 화산이 폭발하거나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고마 할머니는 200번째 생일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바위산이 터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지요. 숨을 거두는 동안 고마 할머니는 난쟁이가 뀐 방귀의 위력이 이렇게나 센지 몰랐다고 생각했어요. 땅을 가르고 바위산 밖으로 용암을 솟구치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고마 할머니는 사람들을 쫓아내려고만 했는데 오히려 큰 화를 입혀서 미안하다고 생각했어요. 부디 자신의 목숨으로 난쟁이 마을에 사람들의 화가 미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지요. 난쟁이 마을의 다섯 지킴이는 그 뒤로도 난쟁이 마을과 바깥세상을 오가며 열심히 소식을 전했답니다.

용암이 휩쓸고 지나간 초원에는 어느덧 새순이 돋고 자그마한 들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난쟁이들은 지진으로 더 비옥해진 바위산 밑자락에 다시 수수를 심었고요. 어딘가 모를 땅 속에서 난쟁이들은 자기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나갔답니다. 자기들만의 방귀 주머니를 가득 채우면서요.



- ⓒ 아프리카와 고양이 글


7년 전 즈음 동화가 쓰고 싶어 한겨레문화센터의 아동문학 작가 과정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었어요. [난쟁이의 방귀 주머니]는 그 시기에 수료작으로 내놓은 저의 첫 동화입니다.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난쟁이라는 소재를 써서 이야기를 지었는데, 어느새 난쟁이가 제 삶 속 깊숙이 들어와 버렸네요. 이 작품을 제출하면서 여러 선생님들께 지도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들께 받은 지도대로 동화가 써진다면 참 좋겠는데, 여전히 동화는 제게 어렵기만 한 존재입니다. 동화작가 과정을 수료한 뒤로 여러 삶의 돌부리들에 걸려 잠시 동화 쓰기를 멈췄지만 시간이 지나도 동화에 대한 아련함이 남아있어 혼자서 계속 쓰고 있네요. 동화는 소설 같은 유려함도 인문서 같은 학식도 에세이 같은 애잔함도 없지만 단순하고 명료한 단어와 문장들로 사람의 마음을 뿌리부터 따뜻하게 움직이는 힘이 있어, 참 간절하게 붙잡고 싶어 집니다.

앞으로 더 나아지기를 진심으로 고대하며,
부족하기만 한 제 동화를 끝까지 읽어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동화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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