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어도. . . 괜찮습니다 ~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진은 은색 풍선 같은 옷을 입은 인간이 달에서 걷는 사진이다. TV로 보면서 '너 거긴 뭐하러 갔어? 쓸데없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자들은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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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은 자꾸만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달은 보는 것이다.
거기까지 가서 돌을 주워오는 건 미친 짓이다. 사람들에겐 해선 안 되는 일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해선 안 되는 일만 하고 싶어 한다. 해버리면 당연한 게 된다.
우리에게 미래가 없어졌다. 미래가 다가오기도 전에 현실이 빠른 속도로 앞질러가기 때문이다. 자꾸만 앞질러 가는 현실을 따라가자니 숨이 찼다. 내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달님' 가운데
성질은 평생 변하지 않으므로, 누구든 자기 성질이 불러들인 인생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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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서 태어날지 아무도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운명이다.
가지고 태어난 성질의 핵심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그게 더 큰 숙명인지도 모른다.
- '어머니에 대하여, 아버지에 대하여' 가운데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장식하고 정결한 그릇을 고르는 건 많은 여자의 취미이다. 나는 그런 잡지를 즐겨 읽으면서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사진에는 당혹감을 느끼곤 했다. 왠지 몸 둘 바를 모르겠고, 부끄러워진다. 하얀 원목 테이블에 자수가 놓인 테이블보라든지, 시트와 베개를 핑크 꽃무늬로 통일하는 짓은 못하겠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면 거리에 가득한 아름다움을 거역할 수 없게 되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손에 넣으면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당~신의 과거는 알고 싶지 않~아." 그러면 숫처녀인 척 남자를 속인 기분이 든다.
-쿠페빵과 <메콜즈> 가운데
예술과 신앙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밀어낸다. 예술이란 버리려야 버릴 수 없는 자아가 낳은 것이다. 신앙이란 자아를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예술은 거대한 진실과 거대한 거짓을 모두 품는다.
죽으면 인간성은 사라지지만, 표현된 것은 남는다. 재능이 크면 클수록 재능과 인격의 관계성은 옅어지는 것 같다.
-'지금, 여기 없는 료칸 스님' 가운데
아이를 위한 글은 새빨간 거짓말이어야 한다. 그 새빨간 거짓말에 이 세상을 정확히 꿰뚫는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진실'은 곧 현실이다.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가운데
아름다운 소녀도 아무 말하지 않는다. 오랜 망설임 끝에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만 한다.
대사는 코란 속 말씀뿐이고, 화면은 먼지 날리는 사막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마음만 생겨난다. 아무것도 없는 단순한 사람들이 마음만 무겁게 안은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온갖 물건과 색의 홍수 속에서 손톱까지 치덕치덕 화려하게 꾸미는 일본의 소녀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없어도 사랑은 있다' 가운데
왜 뭉크는 쓸쓸한 그림만 그렸을까. 뭉크의 사진을 보고 이해했다. 굉장한 미남이다. 미남이 아닌 남자는 세상에 맞서기 위해 희망과 힘을 비축해둬야 하고 스스로 격려해야 한다. 그래서 바쁘다. 미남은 그런 것에 무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내면과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다. 내면과 진지하게 마주하다 보면 자기 안에 있는 광기를 파내게 되는 것이다.
-'절규하지 않는 '절규'' 가운데
엄마의 인생을 생각하면저도 피로해집니다.
"아 피곤하다. 엄마도 피곤하지? 나도 지쳤어. 같이 천국에 갈까? 대체 천국은 어디 있을까?" 하고 물었더니, "그래? 의외로 근처에 있는 모양이야."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더군요.
-'고바야시 히데오 상' 수상 연설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