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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

지나간 것들에 대한 사과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락을 끊고 지낸 지 10년이 넘은 친구들이다. 미리 모임을 계획하고 만나는 것인지, 수화기 너머로 시끌벅적 동창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을 한두 잔 걸치고 기분이 좋아져 내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난 남편과 딸과 노점상에서 떡볶이며 순대, 어묵을 밤참 삼아 먹고 있던 중이었다. 30년 만의 한파에 한밤중 길거리는 시베리아의 꽁꽁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보다도 추웠다. 갑작스러운 남자 동창의 목소리에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가움보다는 당황스러운 감정이라고 하는 게 더 맞다. 그도 그럴 것이 그 10년 동안 나는 의도적으로 그들과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다. 연락을 끊은 이유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컴퓨터 네트워크망만큼이나 복잡한 내 마음 때문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여기에서 풀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에게 전화를 한 진짜 이유가 뭘까 궁금해졌다. 개중에는 정말로 나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동창도 있을 테고, 아니면 단지 분위기에 휩쓸려 돌아가며 전화를 건네받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지 간에 나는 돌아가며 바꿔주는 전화에 일일이 응대를 했고, 그들 중 몇몇은 내쪽에서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어딘가의 공기가 아주 약간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대학 학창 시절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전공에 대한 애착도 그렇지만 특히 동기들과의 관계가 남달리 끈끈하고 의리가 넘쳤었다. 지금 생각해도 남자 동기들과 죽이 참 잘 맞았는데 거침없던 내 성격에 여자 동기보다는 남자 동기가 더 편했기 때문이다. 시험 기간에는 도서관이며 실험실에 붙어 지냈던 터라 몇몇 여자 동기들과도 끈끈한 우정을 맺었다. 51명이 모여 생활했던 우리 과에서 모임을 가지면 거의 30명이 넘는 동기들이 자리를 같이 했었고, 그 모임을 주도한 것은 나를 비롯 나와 우정을 돈독히 하던 동기들 몇이었다. 우리 기수의 끈끈한 우정은 선배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고, 나중에는 선배들까지 모임에 합세해 그야말로 주신제를 지내는 꼴이 되었다. 호기로운 시절이었다.   

자정이 넘어 아이의 잠자리를 봐주고, 쌓여있던 설거지며 빨래를 모두 개고 뻐근해진 허리를 침대에 뉘며 나는 생각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거실의 공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차갑고 차분하게 만든 것일까. 학창 시절의 나는 참 정도 많고 의리 넘치고 덜렁이에 웃음이 많은 아이였는데. 그런 모습 때문에 내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내 주변의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물리치는 사람이 되었고,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을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두려워서일까,라고 생각하면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덧없는 것에 대한 회한. 

내가 지켜내고자 했던 관계가 퇴색해 가는 것을 보았을 때의 허탈감. 


그들의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나도 분명 한 사람 분의 몫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퇴색해가는 그 모습들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건 내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 시절의 나는 그런 것을 알기에 아직 어렸었다. 딱 불독맨션의 「사과(apology)의 노래 가사처럼.  
 
모임이 끝난 다음날 여운이 남았던지 동기 하나가 단톡 방을 만들어 나를 비롯해 나머지 동기들 초대했다. 한차례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톡들이 오가더니 결국에는 공통의 관심사를 찾지 못해 이야기들이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음 날은 눈이 많이 내려, 누군가 자기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눈 쌓인 거리 풍경을 찍어 보냈다. 전날과 다르게 사진에 답하는 동기들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어쩐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까지 아무 말없이 톡을 읽기만 했던 내가 답례로 요즘 머릿속에 흥얼거려지는 노래를 유튜브로 보냈다. 자이언티의 눈. 그리고 몇 분 뒤 결국 동기 한 녀석이 단톡 방을 나가버렸다. 입꼬리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다음 모임에는 어쩌면 나도 참석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모임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어떻게 사는지 자신의 모습과 견주어보다가 어느 누군가는 자기보다 잘 나가는 동기의 모습에 의기소침하거나 부러움을 가장한 야유를 보내겠지. 자주 만나자는 기약 없는 약속 뒤에는 과연 시간을 들여가면서까지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자조적인 의문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또 세월이 한참 지나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지면 지금의 과정이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순환할 것이다. 아무런 소산물을 내놓지 못한 채
 다만 어떻게 사는지, 얼마나 달라졌는지....  톡 방에서 내가 흘려 얘기한 것처럼,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변하지는 않더라는 말이다.


사는 모습은 달라져도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내 안부를 궁금해하는 친구에게 나 역시 크게 변한 것이 없다고 알려주려고 남겼던 말인데 소나기처럼 쏟아붓다 뚝 끊긴 단톡 방의 대화를 보면서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과민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흐름으로써. 누군가는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가치를 매기고 관계를 영글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팔짱을 낀 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고 싶다. 너는 너무 부정적이야 라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생기 있었던 시절에 초긍정적인 아이로 살아봤으니, 지금은 조금쯤 부정적으로 살아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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