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이 60초라는 것도, 한 시간이 60분이라는 것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도, 열두 달이 지나면 한 해가 저문다는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 낸 가상현실이다. 인간은 그 가상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었던 질서와 생존의 에너지를 얻는다."
—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매일 시간을 쫓으며 살아간다. 정해진 시간에 알람을 끄고 일어나고, 일터에 맞춰 출근하며, 약속을 잡고, 밥을 먹고, 쉬고, 다시 잠든다. 너무도 익숙한 이 흐름이 당연한 듯 여겨지지만, 실은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말 앞에 서면, 이 모든 일상이 갑자기 기묘해진다.
시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버틸 수 있도록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리듬이다. 혼란스러운 우주에 인간은 수직적 질서를 부여하고, 하루와 계절을 나누고, 숫자와 이름을 매기며 흐름을 붙잡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삶을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예감, 불확실한 미래, 계속되는 이별과 상실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수단 삼아 정신의 균형을 겨우 유지해 온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인용문을 만났을 때, 뇌리를 스친 말이 있었다. "우리가 시간을 만드는 것이지, 시간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야."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측정하는 것'이며, 그것이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시간을 ‘관리’하려 애쓰기보다, 시간을 발명한 자로서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시간을 통해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얻었지만, 동시에 시간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몇 시까지는 무언가를 끝내야 한다는 압박, 나이만큼 이뤄야 한다는 강박, 하루하루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불안. 이런 것들이 삶을 무겁게 만들진 않았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조심스럽게 건네고 싶다. 우리가 만든 이 ‘가상현실’을 때로는 잠시 벗어나도 괜찮다고. 정해진 흐름에서 조금 벗어나 멈추고, 돌아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인간의 특권이다. 시간은 선물이 아니라 도구다. 우리가 발명한 그 도구를 쥔 채, 때론 다르게 살아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자.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담긴 감정과 관계, 기억과 순간들을 더 깊이 느끼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허구를 삶의 중심에 둔 진짜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