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여행

by 육동녕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이 나이가 30을 바라보면서 초조해졌다.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시애틀에서 직장을 가진 데다 만나는 상대도 있는 눈치이니 좀 있으면 결혼 말도 나올 것이다. 막상 결혼이 되고 나면 둘 만의 시간을 갖기는 어려울 테고 그렇게 되면 그동안 쌓인 것이 응어리로 남을 수도 있다. 이민 초기, 정착을 위한 힘든 시간이 있었고 사춘기였던 아이에게 상처가 될 일이 꽤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동네 맥도널드의 커피나 펍의 맥주 한잔으로 될 일이 아니다. 둘만의 여행을 추진하는 게 어떨까. 바로 붙으면 거절당할게 뻔해 아내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중재를 부탁했다.


아내는, 둘 사이를 오가며 애를 쓴 끝에 한참만에 아이의 동의와 함께 몇 가지 조건을 들고 왔다. '여행지의 선택과 모든 일정은 아이가 계획하고 진행함'. '경비는 반씩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가 여행 중 잔소리 안 하기로 약속하면' 생각해 보겠단다. 여행이란 게, 즐거울 작정을 하고 돈 들여 떠나는 '일탈'인데 이 정도면 노예계약이지만 내가 아쉬운 쪽이니 어쩌겠는가. 나의 '무조건 오케'가 전달된 지 얼마 후, 아이의 직장 휴가에 맞춰 여행 일정과 비행기 시간이 전해져 왔다. 여행지는 파리와 바르셀로나. 여행기간은 11일이었다.


잔소리의 다른 말은 '아이를 위한 걱정'이다.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의 길잡이가 되고자 했던 것인데 좀 지나쳤던지 아이가 힘들었나 보다. 이번만큼은 약속대로 입 닫고 아이 소원대로, '한 번이라도 믿고 맡겨보기로' 결심했다. 첫 도착지인 파리서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이었다. 아무리 배낭여행이지만 시내 변두리의 중, 하급 호텔 정도를 예상했던 나는 첫날 숙소가 파리천철을 국철로 갈아타고 1시간도 더 걸리는, 서울로 말하면 아마도 천안쯤 되는 곳이라는데 우선 놀랐고 마치 돋대기 시장처럼 한국 학생들로 북적거리는 민박집엔 마당 잔디 위에까지 여기저기 침낭이 보였고 그나마 주인은 전화통 들고 빈 방 없다고 한창 악쓰는 중이었다.


아이가 예약한 방은 창문 하나 없는 지하의 2층 침대(도미토리)였다. 식사시간에 밥상 아무 데나 끼어 앉아 먹다 보면 밥알이 어디로 가는지. 아침시간 남녀 구분 없이 화장실 줄 서는 건 기본이고 밤늦게까지 왁자지껄 술판이 벌어지니 이 나이에 품위는커녕 이런 고역이 없다. 그래도 있는 동안 여행자들과 엉거주춤 어울리게 되었는데 이곳에 아예 1년째 눌러앉아 사는 친구, 6개월째 온 세계를 돌고 있는 휴학생, 여자 학생 혼자서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왔다거나 직장도 접고 몇 달에 걸쳐 자전거로만 중국과 위험한 중동을 거쳐 도착한 신혼부부도 있다.


불편한 침대와 식사, 화장실 문제와 밤 시간의 소음문제에 점차 적응되면서 찬란한 청춘의 세상을 만났다. 당연히 최고령자인 나는, 며칠 지나니 이곳의 소란과 젊음의 합창 한가운데 속해있는 것이 무슨 특권같이 느껴졌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 민박집의 마당 툇마루에 둘러앉아 떠들며 마시다 보면 술이 떨어지고 어느새 누군가가 두어 병쯤 새 술을 올려놓는다. 약간은 과장됐을 여행담에 가끔은 시국, 연애담 등을 듣다 보면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부럽고 나 자신이 젊음으로 돌아간 착각에 잠잘 시간을 놓친다.


어느 밤, 마루 모퉁이에 와서 걸터앉은 젊은 민박집주인이 느닷없이 우리 부자를 쳐다보며, '엄마와 딸이 다니는 것은 많이 봤어도 아버지와 아들은 처음'인데 보기가 좋다고 한마디 했다. 민박집주인 역시 여행 중 파리가 좋아 계획 없이 눌러앉은 케이스라고 했는데 속도 모르고 우리 부자가 겉보기에 사이좋아 보였던 듯했다. 둘러앉은 학생 몇몇 이서 우리 부자, 그림이 좋다고, 자기들도 언젠가 지네 아버지와 꼭 여행 한번 해야겠다고 떠드는 바람에 갑자기 우쭐해져 그 자리에서 소주 몇 병값을 술상에 올렸다.


민박집에서 파리로 들어가려면 걷는 시간, 전철 갈아타는 시간 합쳐 두 시간이니, 베르사유나 루브르처럼 표 사기 위해 줄이라도 서야 하는 날엔 민박집은 새벽에 나서야 한다. 시차도 있는 데다 잠을 못 자니 앞장서는 아이를 따르는 것도 드디어는 기진맥진이 되어 파리고 뭐고 좀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런 고생이 여행의 일부라고는 해도, 전 같으면 아이의 치밀하지 못한 계획을 지적하고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에 관해 일장연설했을 것이지만 이번엔 꾹 참는다. 아내의 걱정과 달리 아이와는 아직까지 한 번도 충돌이 없었는데 그것은, 여행 중 일체의 잔소리도 않기로 한 약속을 요행히 100% 지켜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의 힘든 일주일이 지나고 다음 행선지인 바르셀로나에 오니, 다행인 것은 예약된 민박집이 시내와 가까운 곳이라, 고생스러운 기차여행을 안 해도 되고 따로 된 화장실까지 있어 파리 민박집과 비교하면 5성 호텔이 따로 없었다. 살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칭찬의 말이 쏟아졌고 그러다 보니 둘 사이의 분위기가 좀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체크인후 민박집을 나서니 노점이 보였고 마침 시장했던 참이라 노점에서 파는 음식을 사 먹었다. 여러 해물과 쌀을 오징어 먹물에 섞어 쪄냈다는 음식이 하도 맛있길래 음식 이름을 물어보니 '빠에야'이고 스페인의 대표적 대중음식이라고 했다.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운 도시다. 100년을 짓고 있다는 파밀리에 성당을 비롯, 도시 곳곳에 수많은 가우디 건축물이 있고 쇼핑거리와 콜럼버스 동상의 바닷가, 거대한 왕궁 아래 분수쇼도 장관이다. 매일밤, 전 세계에서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속으로 들어가면 온갖 걱정은 달아나고 마음은 덩달아 행복해진다. 이래서 여행을 하나보다. 우리 부자는 기차를 타고 아름다운 몽 셀라토 수도원과 바닷가에 대포가 있는 요새까지 훑어보면서 여행 끝날인 오늘 밤은, 뻔한 하숙집 한식 메뉴 대신 바르셀로나 최고의 빠에야 집을 찾아 그동안 아낀 돈을 털어 이번 여정을 멋지게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백 년이 되었다는 뒷골목의 빠에야 집은 초저녁인데도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들어차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빠에야와 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와인과 맥주를 번갈아 쏟아붓다 보니 우리도 어느새 쉴 새 없이 마시고 떠드는 여행자들과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날 밤, 바르셀로나 뒷골목에서 엇나가던 아이와 엄격했던 아빠는, 처음으로 원 없이 먹고 마시고 떠들며 고주망태가 되어갔다. 늦은 시간, 술집을 나온 나는 먹다 남은 와인 병들고 뒷골목의 담벼락에 비스듬히 기대 누웠고 건너편 계단에 걸터앉은 아이의 모습도 가로등 불빛에 보였다.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하나도 기억에 없지만 그 시간 이후 '화해'니 뭐니 하는 얘기는 안 꺼내도 될 것 같았다. 뭔가 해결이 된 것 같았고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아침, 공항 가는 날이다. '상전'은 아침부터 서두르더니 생각보다 일찍 민박집을 나섰다. 어젯밤 술이 아직 덜 깬 나는 배낭 메고 가방 끌고 묵묵히 뒤 따라가는데 전철을 한번 바꿔 탄 다음 내려 아이가 앞장서 올라간 곳은 어느 성당 앞마당이었다. 아이는 성당 앞 나무 그늘에 자리를 폈고 남은 와인을 꺼내 한잔씩 따랐다. 아침부터 술판을 벌인 동양인 부자를 출근하는 서양사람들이 흘끔흘끔 보든 말든 나는 따라주는 해장 와인을 보며 이번 여행이 꽤 성공적으로 끝난 것을 알았다. 속으로 나의 인내를 칭찬하고 마시며 가만히 자축했다.


아침나절인데도 벌써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바르셀로나의 여름 햇살 속에 부자가 벌렁 드러누워 콧노래도 섞어가며 주고받은 말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아이 ; “아버지, 앞으로 우리 둘만 다시 이렇게 여행하는 건 어렵겠쥬?”

나 ; "… 그렇겠지. 만일 한다 해도 지금처럼 민박집 배낭여행은 아니겠고, 지금처럼 신나게 마시거나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여행은 아니겠지. "

아이 ; "이번 이런 여행도 괜찮네, 빠에야도 맛있었고"

나 ; "맞아, 빠에야 맛있더구먼. "


... 나중, 저놈도 꼭 지 아들 데리고 이렇게 여행할 테고 그땐 우리가 했던 이번 여행이 생각나겠지.

그리고 알까, 지 아버지 성질에 얼마나 참고 따라다녔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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