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시집보내기

by 육동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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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선생님의 칠순잔치 장소인 버나비의 유명 음식점 ‘cedar house’를 찾아 입구에 들어서니 초대손님이 우리말고도 10 가족이 넘어 보였다. 넓은 홀을 통째로 빌려 테이블마다 음식을 차려놓았는데 심장외과 전문의인 아들로부터 오늘 행사 안내가 있었고 고 선생님의 인사말이 있었다. 잘 키운 삼 남매와 손주들 절도받고 테이블을 돌며 와인을 권하는 고 선생님은 오늘 아주 흐뭇하고 즐겁다. 손주 여섯 중, 테이블을 휘젓고 뛰어다니는 까만 피부의 손주 둘은 자메이카 사위 쪽 외손주인데, 고 선생님이 안고서 기념 촬영할 때 축하 박수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지금이니까 웃으며 얘기지만’, 자메이카 사위를 본 고 선생님 부인의 얘기엔 모두 웃음이 터졌다. 흑인을 데려와 인사시키겠다는 딸의 말을 처음엔 농담으로 들었는데 사귀는 게 길어지고 결혼 얘기까지 나오자, 가족 모두가 나서 온갖 설득과 애원을 해 봤고 그래도 안되자, 고 선생님 부인은 딸의 머리를 가위로 자르고 집에 가두어버렸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중 범죄고 경찰에 잡혀갈 일이다. 특히 고 선생님은, 동네 창피하고 집안 망하는 걸로 받아들여 한 집에서 몇 달이나 딸 얼굴도 외면하고 살았다지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아내는, 후배 이야기를 입에 올렸다. 후배는, 딸이 다운타운에 방을 얻어 혼자 살며 직장에 다니는데 가져다주는 음식이나 반찬이 생각보다 일찍 없어지고 약속 없이 찾을 때면 방으로 들이지 않고 집 앞 맥도널드로 끌고 나가는 게 수상했지만 '아마 사귀는 남자가 있는가 보다' 눈치로 짐작하고 시집보낼 생각에 은근히 싫지 않았는데 후에 집에 데려 온 사윗감은 아프리카 출신 흑인 유학생이었다. 시댁 인사차 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니 이제는 반대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백인 남자 친구를 부모 집에 데려와 살림을 차려 살고 있는 딸을 둔 다른 이웃도 있다.


워낙 세상이 빨리 변하다 보니 자녀와의 관계는 한국에서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민사회에서는, 부모의 생업과 영어문제로 아이들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고 자녀들이 자라며 보고 듣는 게 한국과는 딴 판이라 결혼문제로 충돌해도 누구 탓이라 할 수 없다. 대부분 자녀들이 부모의 통제밖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민 1세대는, 어느새 괴물로 자라 있는 자녀로부터 상처받는 경우가 흔하다. 이곳의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생각은 개방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결혼에 관해서는, 피부색에 대한 저항감이 별로 없고 오히려 왜 부모가 반대하는지 이해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시집을 간다'라든가, 한국의 결혼 청첩장에 요즘도 결혼 당사자의 부모를 ‘혼주’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보듯이 한국은 결혼이 집안간의 결합이란 생각이 남아있다. 과거 한국에서는 신분과 혈통이 결혼의 가장 큰 요건이었고 혈족의 대를 잇는 것이 조상에 대한 첫째가는 효도이고 의무였다. 그러나 시대와 세상이 바뀌었고 특히 이곳 교민사회는 바닥이 너무 좁고 '자원'이 한정되어있어 선택의 폭이 많지 않은 데다 아이들의 사고가 그런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자유롭다 보니 ‘아이들을 위해 이민 왔는데 아이들을 잃고 돌아간다.’는 웃지 못할 말도 흔히 듣는다.


이민 1세대가, 자녀와 외국인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건 인종차별 때문이 아니다. 우선, 가족으로 들어온 외국인 며느리나 사위의 종교, 음식문화 등이 다르고 특히 언어가 다르니 가족 간의 소통이 불편하다. 말이 안 통하다 보면 대화는 겉돌고 관계는 소원해지기 마련이라 손주를 안아도 재미가 덜하다. 교민사회의 주변을 돌아보면 외국인 사위, 며느리 얻은 집이 한집 건너인데 아이들 나이가 차면 선택권이 있을 리 없는 부모 입장에서는 마음만 졸일 뿐이다. 어느새 삼십을 넘은, 나이가 꽉 찬 딸을 가진 우리도 이런 일들이 마냥 남의 일만은 아닌 때가 닥쳐왔다.


공장도 없고 회사도 없는 소비도시인 밴쿠버에는, 2세들이 취업할 직장이 마땅치 않다. 쓸만한 한국 신랑감은 직장을 찾아 모두 미국으로 떠나고 없다 보니 딸이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고 무슨 잘못도 아니다. 외국인 사윗감을 데려와도 부모 입장에서는. ‘내키지는 않지만 그냥 늙게 할 수는 없으므로’ 감사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의 준비도 진즉부터 되어있다. 어느 날, ‘딸이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다’라고 알려주는 아내에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제일 처음 물어본 말은, 집안도, 출신학교도, 직장도 아닌, "어느 나라래?"였다.


천만 다행히도 한국 총각이라는 말에 내심 안심이 되었는데 알고 보니 사윗감은, 이곳 태생으로 '이곳 사고'를 가진, 겉만 한국인이다. 허리띠 풀고 침 튀기며 밤새 소주 마시기는 틀렸다. 거기다 어찌 된 셈인지 일 년이 지나도 결혼한다는 말이 없다.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된 아내 말로는, 사위가 결혼에 앞서 '당분간'의 혼전동거를 생각한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높은 요즈음, 몇 년 살아보고 확신이 들 때 결혼을 하는 것도 안전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우리 일이면 얘기가 다르다. 손녀가 결혼식도 없이 방 얻어 몇 년을 같이 사는 사정을 한국 부모님이 알면 뭐라고 할 것인가.


그렇게 살다 어느 한쪽 맘이라도 변하면 '없던 일'이 된다. 이게 될 말인가! 불안해진 양쪽 부모들이 번갈아 음식 준비해서 자리 만들고 눈치 보며 안간힘을 쓴 끝에 겨우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한 날, 속으로는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둘이서 인사하러 왔을 때는 그동안 속 탄 생각에 뜸 들인 사윗감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혼 전 동거를 관철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듯했고 마치 부모를 생각해 '결혼을 해 주는 듯한'느낌도 받았다. 우리는 서둘러 날을 잡았다.


한국에서는 결혼 조건이 집안이나 학벌, 직장이나 인물, 경제력 등으로 다소 복잡한데 비해 이곳의 조건은 단순하다. '당사자가 서로 좋아하고 독립해 살 수 있는 직장이 있으면' 되는데, 거기다 이기적인 부모욕심을 하나 더한다면 '기왕이면 한국사람'이다. 우리 부부의 늦게 시작한 이민생활의 목표는, 그저 '타국에서의 생존과 아이들의 정착'이었는데 요즘 손주들에 빠져있는 아내는, 어쩌다 한국 며느리, 한국 사위를 본 것만으로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말한다.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이곳에서는 큰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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