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텃밭옆 산비탈에는
오래전 아버지가 은행 퇴직하신 뒤,
나중 돈이 될까 하여 심어 놓으신 목련나무가 수십 그루 있지.
관리가 안 되다 보니 제 멋대로 자라
돈이 된 적은 없고
그러나 이젠 제법 굵직하여
이맘때 꽃이 피면 밤에도 주위가 환할 정도인데
매주 월요일, 전화드릴 때마다 어머니는
"봄이 와서 목련꽃이 피었다.
얼마나 이쁜지 너희를 두고 혼자보기 아깝다.
언제 오느냐"
때 늦은 이민살이, 매일이 살 얼음판
어머니 물음에 겨우 대답
"곧 나가요 어머니, 이번 가면 좋은데, 맛있는데 매일 가요"
"뭐가 하고 싶으세요?"
"매일 저 앞에 지나가는 ktx 한번 타보고 싶구나."
봄날, 어머니와 둘이서 대전 가서 ktx 타고 부산에 갔지.
시내 돌아주는 버스도 타보고
소녀처럼 행복해진 어머니와 손잡고
바다도 보고 숲길에 앉기도 하고 종일 데이트하다
저녁에 횟집에 가서 회정식을 시켜놓고는,
모자가 만나서 좋기도 하고
떨어져 사는 게 슬프기도 해
온갖 생각으로 서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두 여자, 회접시 들고 소주잔 들고
우리상으로 옮겨 앉더니
"모자 마주한 그림이 보기 좋다고,
돌아가신 지 엄마 생각나
합석해서 술 한잔 올려도 되냐고"
내 기억 속 어머니가 아이처럼 좋아하신 모습은
그 딱 하루,
그 딱 한 번뿐.
장남처지 내 딴에는 집안일 빠짐없이 챙기고
무엇보다 남보다 한국에 자주 뵈러 나간다는 생각에
이만하면 괜찮은가 애써 미안함을 가렸지.
한국방문 짧은 기간 볼 일에, 친구에, 여행에
같이 앉아 오붓하게 얘기 나누며
팔다리라도 주물러드린 기억이 없다.
가방 끌고 나올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인가 생각하는 어머니,
"이젠 오지 말아라.
너희 갈 때마다 너무 힘들구나. "
"그래, 이민 잘 갔다.
이곳은 미세먼지에, 시끄럽고 전쟁도 위험하고 살 곳이 못된다."
'너희는 좋은 나라에서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아라."
자식이 못내 그리울 때면
90의 그 불편한 몸으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아들 사는 나라 오가는 비행기라도 보겠다고 인천공항을 찾아
종일을 앉아있다 오셨다는 얘기를
재 작년 장례를 모신 날 처음 들어 알았지.
가까이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아무 다른 소원도 없었을
어머니의 그 간절한 그리움을 어떻게 모른 척했을까.
그저 남들처럼 곁에만 살아주면 최고로 좋았을
어머니의 그 큰 기다림을 왜 뒤로 미루기만 했을까.
두 자식을 가슴에 묻으며 온통 시커멓게 타 버린 애간장에,
남은 아들마저 멀리 떠난 뒤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숯덩이 가슴속을 적실 눈물마저 말라버렸을 어머니.
어머니를 찾아 살피는 일 말고
나는 오랜 세월, 무엇이 그렇게 급하고 중했을까.
낯선 땅에서 엉거주춤 한 세월 사는 동안
잃어버린 제일 큰 것.
모시지 못한 20년의 이 불효를
나중 뵈면 어찌 사죄할까.
목련이 필 때면,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과 말없는 깊은 한숨소리에
속이 아려오고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부산의 단 하루 어머니와 행복했던 때가
꿈속 같다.
오늘, 앞뒤 없는 글을 적으며
이제는 아무 소용도 없는 후회와 밀려오는 그리움에
다시 목이 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