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에게 연말은 오히려 우울하기도 하다. 이맘때의 한국의 거리와 여러 추억들이 그립고 가족과 고향산천의 생각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떠들썩한 문화가 기억 속에 익숙한 우리는 별다른 모임이나 만남도 없는 적막강산 이곳의 가족들만의 시간이 외롭게도 느껴진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안나 씨네가 저녁이나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러기로 하고 약속한 날, 약속 장소인 시 교외의 중국음식점에 갔더니 우리 가족 말고도 세 가족이 더 와 있었다. 이민생활의 외로움 속에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는 즐거운 자리였다.
모두 잘 아는 사이인지라 서로 반갑게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망년회니만큼 오랜만에 술도 한 잔씩 하다 보니 기분도 좋아져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중, 안나 씨가 일어나 옆자리의 남편이 잠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안나 씨 남편 경재 씨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사실은 몇 주 전 암 판정을 받았고 곧 치료에 들어갈 예정인데 그래서 입원하기 전에 평소 가까이 지내는 가족들에게 인사차 오늘 모임을 주선한 것이라고 했다.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졌다.
경재 씨의 느닷없는 발표에 잠시 모두 말이 없다가 겨우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암이라고? 요즘 암은 옛날과 달라서 완치율이 높고 더구나 조기 발견했으므로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둥, 특히 캐나다는 다른 건 몰라도 암에 관해서는 시설이나 의료진이 뛰어나다느니, 내가 아는 누구는 암 걸렸다 식이 자연요법만으로 몇 년 만에 완치되었다는 등의 말들이었으나 누구도 그게 위로가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특히 아내는 우울했다. 친척도 친구도 없는 이민사회에서 성당 일로 만나 오랫동안 언니처럼 따르고 지내는 안나씨. 아직 어린 두 딸과 착하기만 한 엄마. 이들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얼마 후 들려온 소식은 경재 씨의 암은 힘들기로 이름난 소장암이고 움직이는 소장의 특성상, 비교적 발견이 늦은 편이었고 일단 시내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안나씨와 아내는 이곳 한인성당 성모회 소속이다. 성모회는 성당 행사가 있을 때나 또는 시니어 교우들의 식사를 위한 음식준비를 맡아하는 성당의 봉사단체인데 안나씨 남편 경재 씨는 안나씨가 일할때마다 누가 보건 말건 부엌 배식구 앞에서 아예 책을 들고 앉아 안나씨의 부엌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걸로 유명하다. 내가 볼 때마다 '팔불출'이라고 놀려도 소용없다. 경재 씨는 아직 한국이 여행자유화가 되기도 전, 바쁜 사업 중에도 초등학교 두 딸을 휴학까지 하게 해서 가족과 함께 긴 세계일주를 할 정도로 가족사랑이 유난했다고 들었다.
수술후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이 이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나 회복은 어려운 것으로 느껴졌다. 몇 달이 지난 후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마침내 한국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한 경재 씨는 병상에 누운 채로 안나씨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도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그저 미안할 뿐이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한국에 가 있는 안나 씨와 통화하면서 병상의 경재 씨가, 가을 이맘때쯤의 밴쿠버 송이 생각이 난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우리 부부는 갑자기 바빠졌다.
우선 10월 예정이었던 한국 갈 비행기표 날짜를 앞당기고 아직 9월 말경이라 송이 철로는 조금 이르지만 집에서는 3시간 운전거리인 이곳 송이 산지인 Pemberton으로 달려가 송이 채취하는 인디언들을 집집마다 찾아 살 수 있는 송이를 모두 사 모았다. 송이는, 농 축산물에 해당되니 당연히 인천공항에서 반입이 안 되는 금지품목이겠지만 그렇거나 말거나 우리는 송이가 한 자루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끌고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반포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경재 씨가 며칠 전 퇴원했다는 걸 확인한 우리는 안나 씨와 통화 끝에 알려준 주소로 집을 찾아 벨을 눌렀다.
안나 씨가 열어주는 문을 열고 아파트에 들어선 순간,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가 소파에 비스듬히 얹혀있는 듯한 경재 씨의 모습에 우리는 말을 잃었다. 마지막을 앞둔 환자에게 병원에서 퇴원을 권해서였는지 아니면 경재 씨가 이민 가기 전에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이 함께 살아 추억이 가득 담긴 이곳을 그가 떠날 곳으로 정해 스스로 퇴원을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여행가방 안에서 송이 자루를 꺼내 송이를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송이 향이 방안에 가득했고 방 한편에 비켜 선 안나 씨와 딸들이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경재 씨의 장례 소식을 들었다. 한국에서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살았고 딸들에게 더 큰 세상을 선물하기 위해 이민을 택했다던 경재 씨, 그러나 마지막은 그가 자라고 살아온 한국으로 돌아가 그가 사랑했던 아내와 두 딸들의 품 안에서 그렇게 떠나갔다. 경재 씨는 우리가 가져갔던 송이를 단 한 개도 먹지는 못했지만 침대 곁에 놓인 송이를 눈물 가득히 물끄러미 바라보며 행복해했다고 한다. 그도 지난날, 가족들과의 송이 추억이 있었을 것이다. 미안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해마다 가을이면 우리 부부는 송이를 찾아 밴쿠버의 아름다운 'sea to sky' 바닷길을 따라 Pemberton으로 차를 몬다. 전에는 아이들과 같이,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난 지금은 우리 부부만.
가끔 안나 씨네 이야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