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한국 나들이

by 육동녕

"네, 맞습니다. 그런데 어디시라고요?" 군청 군수 비서실이란다. 잘 알지도 못하는 군수가 이 바쁜 5월 행사철에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한다니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군수는 나와는 동년배이지만 살았던 동네도, 고향의 졸업한 초등학교도 달라 서로 얼굴이나 아는 정도일 뿐 개인적인 친분은 별로 없는 처지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지방의 이 작은 도시에서 우리 또래치고 내가 '이민 살이' 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틀림없이 군수는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나에게 군 행정에 필요한 자문을 구할 일이 있는가 보다. 부랴부랴 캐나다의 선진행정이나 그동안 내가 느꼈던 우리나라 지방행정의 개선점등, 군수에게 참고가 될만한 것들을 몇 가지 생각해서 정리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비서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군수는 벌써 와서 방안에 자리 잡고 앉아있었다. 별 친분이 없다 보니 둘이 마주 앉아도 화제가 있을 리 없다.


음식을 주문하고 일상사 이런저런 얘기가 겉도는 가운데 식사가 끝나갈 무렵 마침내 답답해진 내가 참다못해 군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늘 나를 만자자고 한 이유가 뭔가요?" 군수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사실 아주 어릴 적 이웃동네에 살면서 기억이 있고 가끔 궁금했는데 요즘 오셨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고 외국생활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시기 전에 식사나 한번 대접하고 싶어서입니다."


용건은 없었다. 작은 시골 도시에서 Homeless차림으로 활보하는 내가 눈에 띄어 사람들 입에 올랐을 테고 군수는 호기심 반 위로 반의 마음으로 연락을 한 것이었다. 혹시 내년으로 다가와 있는 선거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제야 내 모습을 돌아보니, 머리와 수염은 터부룩하고 빛바랜 티셔츠, 반바지 차림에다 배낭까지 메고 다니니 누구라도 한번 돌아볼 만한 행색이긴 했다.


그로부터 두 주쯤 지난 뒤, 밴쿠버에서 온 손님들과 서울에서 만나 겪은 일로 모든 게 분명해졌다. '벤쿠버 손님'이란, 이민사회에서 이런저런 연고로 만나서 안 사이로, 한국에서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약속한 날, 장충단공원에서 세명의 밴쿠버 친구들을 만났고 직장에 있을 때 늘 다니던 시장 골목의 허름하고 오래된 신당동 순대국밥집을 내가 안내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는 한 편으로, ‘역시 이 맛이야!’ 오랜만의 돼지 머리고기와 순대와 막걸리에 감탄하며 허기진 사람처럼 먹어대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말을 건넨다. 돌아보니, 직장시절 업무용 회사차를 운전하던 운전기사 정 기사가 아닌가! 그도 나와 늘 다니던 이 집이 단골일 테니 점심 먹으러 왔을 것이고 나를 알아본 것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직원들의 안부도 묻고 막걸리도 한잔 나누어 마셨다. 혼자 온 정 기사가 제 자리로 돌아간 다음 생각해 보니 정 기사는, 나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누구보다 가까운 직원이었다. '마침 잘 됐다. 이민 갈 때 변변히 작별인사도 못 했으니 오늘 순댓국이나 사 줘야지.' 어! 그런데 눈을 들어 돌아보니 그 새 정 기사가 없다.


카운터에 물어보니, 정 기사는 우리 먹은 값까지 모두 지불하고 조금 전 떠났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민 갔다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는 나이 든 정기사 눈에, 허름한 싸구려 순대집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순대와 머릿고기를 쌓아놓고 게걸스레 먹고 있는 옛 상사가 얼마나 측은해 보였으면 밥값까지 계산해주고 갔을까 생각하니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캐나다는, 정장하고 넥타이 맨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녀 불문하고 정장이 있어도 입고 갈 곳이 없다. 오죽하면 넥타이 맨 사람은 보험사 직원이거나 사기꾼밖에 없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와 달리,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문화 때문 일 것이다. 나 역시 겨울엔 청바지, 여름엔 반바지 차림이 편하고 이게 습관이 되어 습도 높은 여름, 한국에서의 복장도 티셔츠에 반바지가 기본이다.


그런데 이게 고국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보기에, 외국살이가 곤궁한 걸로 비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처가에서는 아내를 위해 장모님과 처제들 옷을 몇 벌 골라 보내왔을 정도이니. 배가 고파 맹물만 마셔도 이빨을 쑤시는 한국의 겉치레 문화도 문제지만 군수나 정기사와의 만남을 겪으면서 편하다는 이유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활보한 나도 잘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한국에 살 때는 몰랐는데, 떠나 살며 건너다보는 한국은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부가 인생을 즐겨야 할 돈을 자녀들 과외에 기꺼이 쏟아붇고 아이들 결혼 때면 혼수와 집 장만에 온갖 무리를 하며 자신의 노후를 털어 넣는다. 경조사도, 축의금 조의금으로 서로 시달리며 악순환이 이어지고 타는 차와 입고 다니는 옷이나 핸드백도 명품 브랜드로 신분을 포장한다.


접대문화가 일상화되어있는 사회풍조 때문에 직장과 사업 세계에서는 부정부패의 소지가 많다. 실력보다 학벌이나 지연, 혈연이 우선이고 과도한 정치싸움, 공권력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의 폭력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민 초기, 나는 이런 문화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캐나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우리의 ‘잘못된 문화’를 고치지 않으면 '한국이 선진국 되기는 어렵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떠나올 때 IMF로 앞이 안 보이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던 한국은,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20년도 안 돼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속에 우뚝 섰다. 가전제품과 배와 자동차, 핸드폰과 K-pop이 세계를 덮고 있는 지금, 한국은 세계 10대 무역국인 경제대국이다. 인천공항을 나와 웅장한 인천대교를 건널 때면 이런 꿈같은 한국의 천지개벽이 경이롭게만 느껴지고 내가 없는 동안 애써준 누구에겐 지 모를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가득해진다.



이민초기, 한국의 여러 '잘못된 문화'를 걱정하며 한국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걱정했지만 '이미 선진국'인 고국의 국민들에게 무슨 충고나 참견을 하겠는가.

나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나의 외국 물 들은 남루한 복장부터 조심하기로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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