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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06. 2022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했던 거야

요즘 당신은 안개 같아요
내가 당신을 오해하게 만들고, 흐리게 보게 하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세요
나를 위해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고
당신의 마음이 나를 향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주세요
앞으로 더 많은 시간 동안 당신에게 미운사람으로 비치기 싫으니까요

-책 <나의 아날로그에게> 중에서


 긴 시간 오해가 불러일으킨 참극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서로에 대한 예의였을 수도, 누군가의 일방적인 사랑이었을 수도, 또 다른 누군가의 가벼운 마음이었을 수도 있는. 우리는 분명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누구도 명확하게 제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속에는 많은 의미가 스며 있었다. 이성으로서 당신을 사랑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사람으로서 당신이 좋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밤, 나의 의미는 당신과 함께 밤을 보내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끝까지 나를 집에 가는 길목까지 바래다주었다. 밤이 너무 늦었어요. 이제는 집에 들어가야죠. 당신의 따뜻한 상냥함이, 그날따라 무척 밉게 보였다.

 당신과의 사랑이 깊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보낸 시간이 무척이나 짧았다. 해가 고꾸라지고 차가운 달빛이 치솟는 밤, 나는 몇 번이나 당신에게 보낼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했다. 이젠 나도 내 마음을 몰랐다.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당신이 와주기를 바라는 건지, 당신이 온다면 나는 진심을 다해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 확신 없는 마음은 깊은 고민의 밤으로 정신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내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데도, 그래도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애매하게 재단하던 내 마음을 당신이 알아채 주었으면 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봐주었으면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때로 눈빛에서 읽히게 마련이었으니까. 당신의 두 눈을 보고 있으면, 나는 나도 모르던 내 순수한 진심을 들켜버리곤 했다. 애써 눈빛을 피했으며, 횡설수설 말을 얼버무렸다. 그런 날이면 당신은 나의 언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당신을 불편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들이 혀 밑에 고였다. 목울대를 울렁거리며,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삼켰다. 아직은 내 마음에 대한 정립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을 안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긴긴밤을 홀로 지새우면서,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손으로 꼽아보아야만 했다. 기준은 없었다. 어쩌면 그런 밤들이 십 수 번 흘러간다고 해도, 나는 내 마음을 확실히 못 정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마음이 궁금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갈수록,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당신은 내 진심을 다 알고서도,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내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면 용서할 수 없겠지만, 그런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보고 싶어 할 것이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거짓말로 치장한 예의라도, 날 가지고 노는 마음이라도 그저 다 좋은 사람. 이런 팽팽한 긴장감 사이에서, 당신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괜찮을 거라는, 참담한 자기 위로.

 그래도 이 관계의 끝은, 모든 게 다 진심이었으면 한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당신과 나의 관계를 확신하지 못하는 나를 당신이 먼저 이끌어주는 것이었다. 그 넓고 따뜻한 품으로 나를 껴안으며 "사랑한다"라고 말해주면 된다. 단지 그 말 만으로 나는, 불확실했던 시간에 대한 불안감을 금세 씻어내 버릴 수 있을 테니까.

 이 불안한 밤의 시간을 당신이 끝내주었으면 좋겠다. 해석되지 않는 각자의 언어를 덮어버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해주었으면 한다. 그 말이 영원한 이별을 뜻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널 사랑해.

 그 말 한마디라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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