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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11. 2022

나의 우주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삶도, 일도, 사람도. 이토록 완벽했던 적이 없었다. 누굴 만나도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 각자의 생태를 지키며 살아가는 반짝이는 행성들의 삶처럼, 적당한 침해와 적당한 무관심으로 이루어진 나의 우주. 나의 우주를 생성해 내기까지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다. 사람을 좋아해서 누군가를 쉽게 믿었다가, 뼈아프게 상처 입기도 했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온전히 내 마음을 꺼내보이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야만 상처를 주지도, 입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런 내 안의 작은 신념만이, 이토록 찬란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우주는 길게 가지 못했다. 신념은 마치 송곳이 가득한 벽에 물풍선을 터뜨리는 것처럼 연약했다. 어느 한적한 겨울, 창밖에 얼음장 같은 바람이 울음소리를 내던 날, 테이블에 마주 앉은 너를 알게 되면서부터. 너의 그득한 두 눈에 담긴 슬픔과 설렘을 읽고 나면서부터. 나의 삶은, 나의 우주는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나의 우주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야 했다. 그 눈빛에 흔들리지 않았어야 했다. 그토록 사람을 쉽게 믿지 말자고 다짐해놓고서도, 나는 무아지경으로 너에게 빠져 들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상처뿐인 만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밤이면 오직 네 생각에 잠 못 이루곤 했다. 그토록 사랑하던 나의 우주, 나의 삶, 나의 일, 나의 사람들은 뒷전이 되었다. 이젠 널 보지 못하면 눈물이 날 정도였다. 어쩌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무너져버리게 된 걸까.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 나는 너를 있는 힘껏 밀어냈다. 그래,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나의 우주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해야만 했다. 너는 전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고, 너처럼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나 따위 사랑해줄 리 만무하다고, 나 혼자 널 욕심냈던 것이라고…. 너를 떨쳐내는 일은, 지금의 내 모습을 깎아내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나의 우주를 지켜낼 수도, 네게서 천천히 멀어질 수도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라는 건, 사랑이라는 건, 그 짧은 대화와 만남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첫눈에 반한다는 거짓말처럼 완벽한 환상 같은 것.

 나는 이따금, 겨울날의 너를 기억한다.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던, 따뜻한 손으로 등을 쓸어주던, 그리고 그 슬픈 "안녕"을. 내 우주를 망치러 온 나의 겨울, 내 인생에 다시없을 제5의 계절. 이제는 그 슬픈 안녕을, 품 안에 담아두어야만 하는 때가 온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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