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Jan 18. 2022

그리움의 층간에서 고백을 주저하는 일

 살면서 가끔은, 어떤 게 정의로운 일일까 생각했다. 도덕적인 것, 세상이 정해 놓은 규범이나 양심 같은 것들. 법으로 명명해 놓은 것들은 그대로 지키면 괜찮을 것 같은데, 때로 그것들은 아주 세심한 법칙까지 뻗쳐있지 않았다. 우리 인간의 감정이나 사랑 같은 관계들. 누군가 없이는 죽고 못 살 것 같은 사랑에 존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 금기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상황들. 그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는 시간들. 그 겹겹이 쌓인 그리움의 층간에서 올라갈지 말지 갈피를 잡을 수 조차 없는, 사랑이라는 건 그토록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 온전히 가슴이 시키는 일이었다. 밤이면 늘 네 생각에 사무쳐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감정을 덮어야만 하는 게 야속했다. 사람이 누군갈 이토록 그리워하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쉽게 내 모든 것들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 안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열렬한 사랑을 택해버리면, 상처받는 사랑들이 있었다. 너의 사랑들에도, 나의 사랑들에도, 거대한 혜성이 행성을 직파하는 어느 밤처럼, 모든 걸 멸망시키고 말 거란 걸 그저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었다.

 애써 너를 밀어내면서, 두 번 다시 널 만나는 일이 없다고 다짐하면서도, 내 영혼이 몇십 번이나 부서지는 걸 느꼈다. 얼굴 한 번만 보고 싶다고, 목소리 듣고 싶다고 보채는 널 그저 바라만 봐야 한다는 건,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과 또 한 편의 현기증 같은 그리움과 뜨거운 애달픔이 보풀처럼 일어났다. 겨우 잠재워놓은 감정들이었는데, 나의 고백을 기대하는 너의 채근으로 마음이 수차례 흔들리곤 했다. 나도, 나도 네가 무척 보고 싶다는 말을, 널 한 번만이라도 더 뜨겁게 안아 보고 싶은 것을, 네 품에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들을, 달이 기우는 밤마다 널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삼켰다.

 널 마주하고 있으면, 혀 밑에 얼려놓기로 한 수많은 고백이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그 달콤한 맛을 느끼면 안 되는 데, 그 맛을 알기 때문에 자꾸만 너에게 고백하고만 싶었다. 사랑해, 사랑해, 나도 널 무척이나 사랑해,라고. 그럼 너도 잔잔한 눈빛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그 대답을 알고 있어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만 널 기다렸다.

 ─ 나 이제 앞으로 널 못 볼 것 같아.

 우리는 절대 서로를 사람대 사람으로 만날 수 없었다. 아주 진한 우정이라도 남을 수 없는 것. 널 미워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널 사람이 아니라 사랑으로 보기 때문에. 나 홀로 그리움의 층간에 남아, 한 계단 한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가슴으로만 울어야만 하는 게 맞았다. 그게 세상이 정해놓은 사랑의 방식이었고, 너와 나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었고, 우리가 상처받지 않을 일이었다. 네가 눈물을 흘리며 내 손목을 붙잡았다.

  ─...

 그리고 다시 천천히 손을 놓았다.

 때로 사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으나, 가슴이 인정하지 못하는 감정이 있었다. 우리는 그 층계에 서서 마지막 남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천천히 잊히게 될, 낡아지게 될, 무뎌지게 될, 그저 좋았던 날들로 남게 될, 아련한 기억으로 묻힐 그 얼굴을.

매거진의 이전글 운명에 순응해야지, 그러기로 약속했다는 듯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