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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24. 2022

모든 게 널 위해서였어

 모든 게 널 위해서였어.

 고요한 침묵 사이로 쏟아지던 눈발, 눈물이 말라 차갑게 식은 뺨, 아른거리는 눈동자. 침잠한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고백을 삼켰던 건, 너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네가 뻗은 손, 그 따뜻한 온기를 차마 거절하지 못해 얼어붙은 나는 네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어. 다가오지 마라고 밀어내면서도, 요동치는 마음속에 해일이 불어 닥쳤어. 제발, 나에게 이러지 마라고, 너에게 애원하고 싶었지.

 언젠가 네 앞에서 사랑을 노래할 때, 그 고백 속에 담긴 진심을 읽어주길 바랐어. 네 곁에 있고 싶다는 말 말고, 그런 마음임에도 널 떠나야만 한다는 진심을. 너에게서 벗어나는 일은, 나에게 살을 도려내는 것만큼 크나큰 아픔이라는 걸. 그러나 너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순진한 눈으로 내게 한발, 두발 다가왔지. 나는 언제라도 널 할퀴고 도망갈 수 있는 마음이었는데 말이야.

 오지마라고 소심하게 내뱉은, 공격력 하나 없는  시들한 반항에 너는 성큼성큼 다가왔어. 네가 다가올 때마다  막힐 정도로 행복했다가, 가슴 찢어지게 아팠어. 어떻게끝을 미루고 싶어 하는, 절망의 끝에 매달린 사람처럼 나는 죽음을 두려워했어.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뜨거운 눈빛이 죽는  말이야.

 생명이 꺼져가는 사랑은, 죽음을 눈앞에 두자 더욱더 처절해졌어. 어떤 밤은, 그냥 다 내려놓고 널 마음껏 사랑할까 싶기도 했어. 긴 밤 그리움이 쏟아지는 네 두 눈을 바라보면서 너를 뜨겁게 안아주고 싶고, 입 맞춰주고 싶었어. 도망가자는 농담에 손을 잡고 도망치고 싶었어. 어쩌면 너도 그러길 바랐는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내 마음도 그랬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아. 우리가 도망쳐버리면 상처 입을 사람들이 많았어. 흘러간 과거와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랐어. 나는 차마, 그 책임을 져버릴 수가 없었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우리 모두,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었잖아.

 그저 좋은 마음으로 네가 나에게 다가올 때, 그 순진하고 순수한 마음에,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묵직한 죄책감에 짓눌려. 나는 끝을 아는데, 우리가 결국 헤어지게 될 거란 걸 아는데. 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잖아. 우리가 나중에 받을 상처 따위, 내일의 우리에게 계속 미루기만 했잖아. 오늘이 너무 좋으니까, 그냥 보고 싶으니까.

 나는 너무 불안해. 우리가 그저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안고 있으면, 모든 게 부서져버리게 되니까. 더 큰 상처를 안고, 붙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게 될 테니까. 내가 너를 있는 힘껏 밀어내며, 제발 다가오지 마라고 소리치게 될 테니까. 부풀어가고 있던 감정의 해일이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게 될 테니까. 우리의 사랑은 그 해일에, 속절없이 부서지고 무너지게 될 테니까.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될게 뻔히 보이니까. 그냥, 나는 천천히 너를 내려놓으려 해.

 조금씩, 조금씩 상처받으면서 천천히 무뎌져 가는 법을 익혀야만 해. 이제 이건 실전이야. 한 번만, 또 한 번만 그런 연습은 없어. 우리에게 '한 번 만'이라는 연습은, 그저 마음을 더 깊게 만들 뿐이야. 내 욕심으로 널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 '한 번 만'이 부풀린 감정을, 단 한 번에 부술 자신이 없어. 난 그냥,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모든 게 널 위해서야.

 아니, 어쩌면 날 위해서일지도 몰라.

 이제 더는 아프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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