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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2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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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어가는 겨울의 끝에 서 있는 시간은, 눈물 날 만큼 눈부셨다. 눈앞에 드리운 햇살 아래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봄. 봄이 온다는 건, 우리의 계절도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봄비 같은 비가 찬란하게 내리던 날 아침, 지난 새벽의 아픔을 그러쥐면서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만 했다. 이 반복되는 행복의 지옥을 끊어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네가 우리의 행복을 끊어낼 수 없다면, 우리가 계속 우리를 욕심내고 있다면, 그럼 누군가는 모질게 이 사랑을 밀쳐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날 밤은 나에게는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울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아직도 네가 그립고 보고 싶었다. 너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주고 싶었고, 네 품에서 나던 향기를 맡고 싶었고, 네 얼굴을 만지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단지 그건 나의 욕심이었을까. 이제 더는 우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기한을 정하고, 그 기한까지만 참아보자고 했다. 너는 체념하듯 그러자고 했고, 나는 쓰린 속을 삼키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에게 기한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 기한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그 기한만 참으면 정말 널 온전히 잊을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사실 널 덮을 자신이 없었다.

 널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깊어졌다. 천년 같은 하루가 흐르면 농도 짙은 그리움은 눈물이 되고,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천년 같은 하루가 한 달을 넘어 일 년이 되고, 십 년이 되면 그때 즈음 무뎌지게 되지 않을까. 너도 날 완전히 잊게 되지 않을까. 그럼 차라리 이 모든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고.

 널 잊어가는 과정이 괴롭겠지만, 널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쓸 테다. 네가 놓고 간 서랍 속 향수를 열어보며, 아주 가끔 가슴 아파할 테다. 너의 미소 짓는 얼굴과 상냥한 목소리와 날 따뜻하게 품어주던 가슴을 잊어갈 것이다. 그런데도 네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땐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막막한 아픔이 밀려올 때는 그저 하염없이 울고만 있을 것 같다. 네가 미치도록 그리운데, 널 보고 싶지 않다고 되뇌며. 아니, 보고 싶지 않아야만 했다.

 나는 가끔도 네가 꿈에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럼 꿈속에서나마  사랑으로 안아줄  있으니까.

 사실 그렇게 모질게 했던 ,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해줄 텐데. 뜨거운 포옹을 하며 동그랗고 순수한  눈을 바라봐 줄텐데.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품에서 실컷 울라고  텐데. 그리고는 함께, 영원히 지지 않을 우리의 계절을 바라보며 입을 맞춰 줄텐데. 그럴 텐데. 하지만 너는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영영 사라져 버릴 사람처럼.

 어둠 속에서 널 찾는 일을 그만둬야 하는데, 목놓아 네 이름을 부르면서 널 찾고 있다. 어디 있느냐고, 그냥 얼굴 한 번만, 아니, 목소리 한 번만 들려줄 순 없겠느냐고. 하지만 차라리 네가 대답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네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또다시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널 뜨겁게 사랑할 수 있었던 계절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추억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우리의 이별마저 아름다운 것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끝까지 널 온전히 사랑하는 일, 사랑으로 널 지워내는 일, 이 모든 계절을 묻어두는 일 그리고 널 회상하는 일. 아프지만 어여뻤다고. 언젠가 먼 훗날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꼭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는 널 정말 많이 사랑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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