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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r 22. 2022

고독까지 아울러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에 늘 빛이 함께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환히 웃어야만 했던 건, 순전히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내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걸 애써 열어 보일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 차갑고 시린 마음을 아무리 설명하려 애써도 타인에게는 와닿지 않을 감정이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얼마나 빠르게 매서운 고독을 향해 치닫고 있는지를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외로워 죽을 때마다, 밤마다 무릎을 껴안고 울음을 삼켰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조언을 구해도,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럴싸한 답은 '어두운 고독마저 사랑하라는 것', '때론 외로움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게 약인지 독인지도 모른 체, 나는 다만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있는 힘껏 고독 속으로 영혼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하면 아픔에 무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울어야만 한다면 차라리 남모르게 울고 싶었다.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벽에 기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는, 나름의 해결책이라고 하는, 깊은 우울의 수렁에 몸을 던졌다. 우울도 무뎌지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누군가에게 허락한, 타인이 내게 남긴 상처의 아픔이 아니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있는 힘껏 할퀴고, 찌그러뜨리고, 찢었다. 그 수천번의 구겨짐 속에 내 가슴은 셀 수 없을 만큼 미어지고 짓이겨졌다. 오히려 우울은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시커먼 자책은 우주의 블랙홀처럼, 별처럼 반짝이는 희망들을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 그 시커먼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가면, 나는 결국 헤어 나올 방법을 찾지 못해 계속 또, 계속 울기만 했다.

 하염없는 슬픔에 매몰되면, 곁에 남아있던 희망은 부서져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 깊은 슬픔의 우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몰랐다. 이제는 타인의 위로도, 조언도, 응원도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해결책은 약이 아니라 독이었다. 매일 밤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리고, 차갑게 얼어 죽어버린 마음에 있는 힘껏 심폐소생술을 했다. 뜨겁게 다시 뛰게 하기 위해 두 손을 비비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으며 실없는 희망 따위를 속삭였다. 책이나 영화 같은 것들을 보면서, 이 세상엔 존재하지도 않을 터무니없는 로망을 불어넣었다. 너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러니 부디 죽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마음은 좀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울이라는 어둠 속에 몸을 내던졌다. 그 깊은 우울 속에서는 또 다른 나 자신도 내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나는 깊이, 더 깊이 검은 그림자 속에 감춰지고 사라졌다. 날 사랑한다는 사람이 나타나 나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손마저 희미하게 보일 뿐, 잡을 수 조차 없었다. 사랑이 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마저 날 구원해주지 못했다. 나는 더 한없이 작아져갔고, 찌그러져갔다. 이제는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타인이 주는 상처도,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도 안고 싶지 않았다.

 ─ 날 그만 내버려 둬. 날 살리려고도 하지 말고, 죽이려고도 하지 말고. 이 공간에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이렇게 내버려 둬.

 누구에게 하는 말인 줄도 모를 혼잣말.

 이불속에 웅크린 채로 조용히 내뱉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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