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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04. 2022

바다와 파도와 윤슬, 그리고 강가

 한 줌씩 쥐어놓은 마음들이 모래처럼 스르륵 빠져나갈 때, 그 기분이란 입밖에 내뱉을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기분이었다. 아주 꽉 붙잡고 있었던 탓일까. 소중한 것들은 오히려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고 말았다.

 반짝이는 윤슬과는 반대로 내 기분은 깊은 심연의 밑바닥 위에 앉아 잠수하는 기분이었다. 오래도록 고여있는, 초록물결이 천천히 일렁이는 강가에서 나는 아주 작은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고요하기만 했던 물가는 이내 아주 큰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파동마저도 얕게 사그라들었다. 마치, 심연에서 숨을 참고 물 위를 올려다보는 듯한, 지금의 내 기분처럼.

 고요한 숲 속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와 촐랑거리는 물소리 그리고 아주 얕은 산새의 바람이 있었다. 기분 좋은 햇살 아래에서 가슴은 오히려 더 낮은 곳으로 빨려 내려갔다. 주옥같은, 혹은 대단한 생각들이 쏜살같이 흘러가버릴 것만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더 편했다.

 당신을 등지고 돌아오던 어느 봄날, 그날의 바다가 모든 정신을 헤집고 올라왔다. 그때의 바다도 오늘처럼 윤슬이 찬란하게 반짝이곤 했었다. 바닷가 주변으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고, 해변의 모래는 사정없이 흩어지고 휘날렸다. 그 모습을 무심한 듯 사랑이 묻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른들과 오히려 제 인생에 대해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청년들의 입술들로 해변의 보이지 않는 공기를 뜨거워졌다. 그 조용한 소음들 사이로, 지금처럼 그때도, 멍하니 회상 아닌 공백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밀려들었다 쓸려나가는 바닷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반짝거리는 윤슬과 찰싹거리는 바닷소리.

 그때의 나는 특별히 거창한 생각들을 떠올리지 않았다. 단지, 다시는 사랑했던 어떤 이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을 뿐이었다. 다짐이 반복될수록, 오히려 그 의미가 불투명해지곤 했다. '그 이를 잊어야지' 싶다가도, '왜 잊어야 하지?' 했다가도 또다시 '잊어야지'가 되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나의 건조한 눈빛은 그 수많은 다짐들이 파도처럼 부서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느리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의 바다는 참으로 생명력이 넘쳤다. 멈출 듯 멈추지 않는, 육지와의 기다란 줄다리기는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마치, 당신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던 그 찰나의 순간들처럼. 아주 잔잔히 흐르는 강가를 바라보면서, 그날의 바다를 다시 떠올려본다. 다시는 당신을 떠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나는 오늘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잊겠다고, 기필코 잊어버리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들이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나는 아주 깊은 심연으로 영혼을 뉘었다. 다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던, 무심했던 눈빛만큼 무심해지고픈 마음을 애써 꺼내 올리면서. 나의 숨은 아주 작은 공기방울들이 되어  위로 바지런히 올라갔다.  공기방울 속에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한껏 담겨 있었다. 아주 잊어버리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쉬고 있는 일생동안은,  작은 공기방울처럼 끊임없이 당신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조금 비참하고, 많이 그리울 당신을 꺼내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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