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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08. 2022

오늘도 조금씩 눈물지을 우리의 영혼에게

 당신을 사랑한 모든 날들을 아울러 지난 나의 삶을 달아본다면, 과연 어떤 시간이 더 묵직할까. 살아온 날들의 기간을 합산하면 분명 몇십 년의 내 인생이 더 무겁게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벅참의 기준은 단지 살아온 날들을 꼽아보는 것만으로 전부가 아니었다. 무궁무진할 삶, 다 살아보지 못한 진득한 세월은 우주의 나이에 굴려지는 1초 운명 속에서 빠르게 소진되어 갈 테다.

 천년이 하루같이 흐른 우리의 시간은 지구와는 전혀 다른 행성에서 시작된 것 같았다. 어떤 날의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기도 했고, 어떤 날의 우리의 시간은 천년 같은 하루 속에 갇혀 있기도 했다. 일정하지 않은 야속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 인생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수만 가지의 감정을 느꼈다. 단지 당신을 사랑한다는 이유 만으로.

 온전히 당신을 잊고 지낸 날이 없었다. 당신과의 이별연습을 감행하면서도, 나는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당신의 얼굴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짓눌러도, 박박 지우려 해도, 당신의 잔상은 스펀지처럼 내 시간을 빨아들였다. 그 침잠한 고독 속에 눈물을 떨구면서, 그래도 꾸역꾸역 당신을 만나지 않는 연습을 했다. 앞으로 다가올 숱한 시간들을 홀로 견뎌내야만 했으므로.

 주변의 수많은 눈길들은 되레 날 채근하기만 했다. 네가 붙잡고 있는 것이라고, 그 사람을 위해서는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내가 단지 당신을 잊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혹은 당신처럼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욕심 때문에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게 아닐까. 밀려드는 죄책감은 서둘러 당신을 놓을 생각을 했다. 그러자 당신이 내 손목을 다급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이런 주저함에도 내 잘못이 있다고, 그러니 곁에 있어 달라고. 촛불처럼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촛농처럼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당신의 그 뜨겁고 간절한 손을, 나는 차마 매정하게 놓을 수 없었다. 이별을 주저한다는 것, 당신의 눈빛을 무를 수 없다는 것, 당신에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의 방증이었다.

 이 기나긴 관계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으로만 결론지어질 우리의 종착지에, 나는 때로 영화 같은 결말을 상상하곤 한다.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어지는 영화 말이다. 그 열린 결말에서는 관객이 상상하는 바에 따라 엔딩이 다르게 해석되곤 했다. 해피엔딩일 수도, 새드 앤딩일 수도 있는. 아니, 어쩌면 우리는 간이역에서 잠시 쉬고 있는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결말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단지 우리가 서로에게 입힌 상처 때문에, 잠시 쉬었다가는 것뿐이라고. 우리가 힘겹게 걸어온 지난 날들, 극복과 이별 속에 눈물지으면서 그렇게 한층 성장해가리라.

 그러니 웃자. 지금은 우리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고. 잠시 이별을 접어두자고. 오늘도 조금씩 눈물지을 우리의 영혼에게, 아주 작은 위로를 건네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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