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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13. 2022

Like the Movies

 당신과 나 사이 피어난 환희 속에 아름다운 꽃이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흩어져버릴 꿈같은 환상일지라도, 그 찰나의 새벽은 길게 길게 이어졌다. 우리는 사랑에 빠진 걸까, 아니면 한 순간의 태풍일까 의심하는 것도 사치였다. 이 공간에는 당신과 나 둘 뿐이라는 게, 모든 불안을 잠재웠다.

 짧지만 아득한 시간들 가운데, 침대 위에 포갠 두 손가락 사이로 애달픈 사랑이 보였다.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그토록 긴 시간 동안 감정을 아껴왔는 줄도 모른다. 귓가에 달콤하게 부서지는, 어쩌면 삼류 멜로 영화의 흔해 빠진 사랑고백일지도 모를, 뻔하지만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당신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금세 어겨지고 말 약속과 쉽게 이야기하는 다짐이, 언젠가 틀어지고 말 거란 걸 알면서도 자꾸만 당신에게 기대고 싶었다. 정말 당신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아주 달콤한 꿈을 꿨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우리에게 속으면 어떠랴. 조금 가볍게 당신의 콧등을 건드려본다. 사랑한다는 말 끝에 가슴 아픈 이별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만 집중하고 싶다고. 달빛에 반짝이는 당신의 눈동자와 귓가에 시원하게 부서지는 파도소리, 은은한 윤슬에 올려 둔 우리의 대화들. 조금 기운 빠진 목소리로 당신이 먼저 이별의 두려움을 이야기한다면, 나도 그때야 우리의 이별을 만져볼 테다. 동이 트면, 아침 새가 지저귀면, 파도소리가 잔잔해지면. 그럼 우리는 너른 하게 펼쳐진 꽃길을 상상하며, 해변의 모래를 사각사각 밟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과 두 눈을 마주치며 내가 이렇게 말할 테지.

 ─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당신과의 좋았던 기억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싶다.  가슴속, 언제고 뜨거울 환상 속에 가둬둔 , 현실로 나와선 당신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사랑. 이제  '사랑'이라는 말은,  한, 삼류 멜로 영화 대사 같은  하지 마라고.

 나는 지긋지긋한 현실까지 당신을 끌고 나와 우리의 순간들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이게 우리의 사랑에 대한, 나의 마지막 배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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