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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10. 2022

내가 당신에게 하나의 장르가 될 때

 내가 당신에게 하나의 장르가 될 때, 숲에 흩어진 꽃잎들은 별이 된다. 햇살에 찬란하게 반짝이는 별빛들이, 우리의 주변을 동그랗게 에워쌌다. 당신의 검은 두 동공이 맑게 빛나고, 그 눈길이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내게 온다. 그 시냇물 같은 시선에 띄워진 사랑이란, 순순히 떠밀려온 버들잎처럼 순수하고 깨끗했다.

 봄볕처럼 따스한 손과 바람에 살랑이며 헝클어지는 머릿결, 뒤돌아 살짝 웃는 미소가 가슴을 뜨겁게 물든다. 아주 살짝 멍이 든 자두처럼 말랑 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 입 크게 베어 문 달큼함에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내 입술을 엄지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씩 웃던, 그 장난기 어린 표정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 틈엔가 재빠르게 다가온 당신의 얼굴을 채 피하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의 얼굴 사이를 지나던 작은 꽃잎들이 화들짝 놀랐다. 숲과 꽃과 강물이, 모든 자연 속에서 자신이 가진 악기로 연주했다. 우리도 우리만의 방식대로 자연의 틈바구니 속에 끼었다. 입술 사이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밀접한 소리들이, 모든 정신을 새하얗고 아득하게 만들어버릴 만큼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입술과 입술, 코끝과 코끝, 그렇게 시선과 시선으로부터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당신의 눈빛이 기억난다. 그 장난기 가득했던, 용감하고 굳셌던 검은 눈동자는, 아주 천천히 떨리고 있었다. 조금 당황한 듯, 어쩌면 설렘이 에워싼 눈길에는 더 이상 잔잔한 강물 따위 흐르지 않았다. 격정으로 흔들리는 시선과 함께 놓쳤던 심장소리가 거세게 들렸다. 당신이 어찌할 줄 몰라 눈을 끔벅이던 사이, 이번엔 내가 용기를 내어 당신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던 손은 어느 틈엔가 몹시도 뜨거워져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의 눈 속에 숨어버린 진심 따위 살펴볼 여력도 없었다. 단지 우리를 에워싼 이 모든 자연의 연주들이, 숲 사이를 스쳐 지나는 바람들이, 우리가 맞잡은 뜨거운 손이 진심이라고 믿게 만들어줄 뿐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우리에게 진심이었을 테다. 이 시간이 지나, 설령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대도 괜찮다. 지금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간절한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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