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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ug 26. 2022

우리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적당한 사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불온전한 가치만이 머릿속을 부유하곤 했다. 그걸 누군가는 고집이라고 했지만, 나는 해답을 찾지 못한 내 안의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생각하는 고집과는 조금 다른 결의,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고 부서지곤 하는, 극단적인 부정과 우울감들.


 '재미없는 인생,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 단 하루만이라도 즐거운 것을 할 수 없나? 왜 우리는 늘 미래를 꿈꾸며 살아야 할까?' 이 사고는 내 머릿속을 지배한 아주 짙은 질문이었다. 재미없는 인생에 왜 그토록 집착하며 사느냐 물었을 때, 타인들은 살아야 하니까 살아야 한다고, 죽지 못해 산다고,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했다. 타인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혼자 남겨진 밤중이면 늘 의문만이 가득했다.


 우리는 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행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고,
반드시 무언가를 책임져야만 할까?

 사는 게 버거운데, 왜 그걸 꾸역꾸역 인내하며 살까.
그게 삶이라면, 인생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가.


 뿌리가 굵다고 생각했던 가치관은, 사실 아주 연약한 것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삶이 참으로 부질없게 느껴졌다. 완벽을 좇았으나, 세상에 완벽한 완벽은 없었다. 그 사실이 내 눈앞을 어둡게 가렸다. 우리는 어쩌면 탄생의 신비로움과 고결함 속에 완벽한 존재로 태어나,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자궁 밖으로 미끄러지듯 밀려난 탄생에 우렁찬 울음소리는 어쩌면, 삶의 고통을 인지한 윤회한 영혼이 내지른 비명이 아닐까.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걸 자각하고 살아가는 것만큼 버거운 삶이 있을까.


 우리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가야만 한다니, 참으로 버겁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까. 열심히 한만큼 보상이 돌아올 거라고, 어찌 그리 자신하고 굳게 믿을 수 있는 걸까. 세상이 냉정하다는 것을 배웠다면, 열심히만 해서는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달을 법도 한데. 아무도 부정적인 삶에 대해 대비하지 않는다. 어쩌면 허황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기루 같은 삶을 만들기 위해, 그런 완벽한 삶을 만들기 위해 현재의 '나'를 망가뜨리고 있다.


 냉정한 세상은, 열심히 산 사람의 인생에 포상을 내려주지 않았다. 영리하고, 어쩌면 영악하기까지 한 강자만이 물질만능주의로 가득한 이 세상을 맘껏 향유하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정도로 영악한 사람인가. 아니, 나는 사실 그렇게 치열하고 똑똑하고 영악하게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었다. 영리한 자들 사이에 끼어, 그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 발버둥 칠 에너지도 없다. 이미 열심히 살아보았고, 부딪혀보았고, 냉정한 세상의 바람에 얼어 부서져보기도 했다.


 수없이 부서지고 무너져보기만 한 인생, 이제 더는 무너지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려놓았다. 그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내려놓으면서 내 인생도 쓸데없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진 소소한 것, 아주 소중한 인연들, 그리고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무의미한 것처럼 여겨졌다. 죽으면 사라지게 될 것들, 우리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들, 그런 영상물과 그런 문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불완전한 영혼들이 만들어놓은 틀이, 시간이라는 자연의 바람에 녹진해지게 될 것을.


 없이 태어나, 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 그러니 지금 가진 것, 향유하고 있는 것들이 하찮고 작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았을 때, 인생은 그렇게 거창하게 꾸며나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그리며, 현재의 내 몸을 부서져라 내던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버겁고 죽을 것 같은데,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한들, 얻어지는 게 과연 무엇이 있을까.


 마음을 고쳐먹고, 오늘날 내가 하고 싶은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가 보기로 한다. 내일은 어떻고, 모레는 어떻고, 아주 먼 미래 몇십 년 뒤의 내 모습이 어떨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지. 여행인가, 휴식인가, 잠인가. 타인에게는 게으르고 나태하게 보이는 것들이라도 괜찮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광활하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쉬고 싶은 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다.


 '인생은 재미없다, 그러니 하루하루 내가 즐기고 싶은 것만 즐기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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