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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Sep 01. 2022

너와 함께하는 모든 날들을 사랑할게

 새벽녘에 느리게 피는 꽃은 소박한 순백의 얼굴을 띠었다. 격정의 끝에 매달린 허무함이 처연해서, 마지못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 당신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격조 있는 어투가 됐다. 조금 더 섬세하고, 조금 더 상냥한. 그래서 당신의 설득에 마음이 훨씬 더 너그러워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마음으로,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온몸으로 맞으려는 두려움을 안고 있어야만 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는 것처럼, 이별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사랑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곤 했다. 대비할 수도 없고, 때가 되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 이별을, 어쩌면 사랑의 배반을 두려워하는 일. 온몸이 떨리도록 울고 나서야, 나는 사랑하는 당신에게 겨우 대답을 뱉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나의 선택은, 사랑하는 당신을 놓지 않으려면 애초에 평생 함께하자는 약속을 누그러뜨려야만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당신을 내려놓는 시간 속에는, 그 숱한 밤 눈물로 망가져가는 사랑을 바라보며 무너져가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당신을 내 가슴속에서 완벽하게 도려낼 수 없었다. 아주 옅은 핏줄이 연결되어, 살점 하나하나 위태롭게 떼어내야만 했다.


 칼을 들어 위태로운 수술을 감행하는 내 손목을, 당신은 결국 참지 못하고 붙잡았다.


 난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 이별을 감행하는 건, 순전히 당신 두려움 때문이잖아.


 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당신을 바라보았다. 우는 순간 완전히 무너지게 될까 봐 애써 슬픔을 참아왔던 건데, 나는 끝내 당신의 얼굴을 보고 흘러내리고 말았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한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쥐었다. 이제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신이 당신의 따뜻한 품에 나를 안으며 말했다.


─ 두려워하지 마. 내가 끝까지 곁에 있을게. 나중에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내가 그 순간마저 사랑할게. 너와 함께하는 모든 날들을 사랑할게.


 푸른 빛깔이 흘러내리는 밤. 차가운 공기가 입술 끝에서 부서지고, 뜨거운 품 안에서 무너져내리는 순간. 당신의 따뜻한 목소리는 나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차갑게 떨리던 두려움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떨리는 눈으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그저 말없이 내 머리를 끌어안고는, 품 안에서 남몰래 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상냥한 마음이 고마워, 나는 한참 당신의 품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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