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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노트 Jan 11. 2022

비상착륙

"착륙 불가능합니다, 활주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착륙 불가능합니다, 활주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  플로리다 지역 특성상 낮과 밤의 일교차로 아침에는 안개가 자주 그리고 낮게 낍니다. 밤늦게 키웨스트 섬에서 이륙해 아침 일찍 베로비치로 착륙을 계획한 이 비행에 변덕스러운 날씨는 가장 큰 스트레스입니다. 모든 비행에 책임을 진 저로서는 6시간 비행 내내 날씨가 좋다 하더라도 이 안개 때문에 전체 일정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흠.. 도착이 아침 7시 30분이니까 그때 시정이 어떻게 되지?"


"지금 보이기론 문제없어요 형."


"혹시 몰라 비상착륙할 공항은 봐 뒀으니까 비행하면서 계속 체크하기로 하고, 출발하자!"



학생 딱지를 떼기 위한 마지막 자격증 과정에 있는 우리는 플로리다 지역을 교관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간을 쌓고 있습니다. 밤 11시 30분 우리는 연료를 넣으며 날씨를 체크합니다.



"연료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득 넣고!"



비행을 너무 사랑하는 우리에게 비행 스케줄을 취소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하늘을 누비며 낮에는 푸른 바다를 선사하며 밤에는 불 켜진 멋진 야경으로 피로를 잊게 하는 사무실에 앉아본 사람은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비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키웨스트 타워, 이륙 허가합니다"



드디어 타워에서 이륙 허가를 받고 이륙합니다. 드디어 이륙을 위해 활주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조종사와 승객 모두에게 가장 떨리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서로 의미는 다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속도는 점점 올라가고 주변은 시끄러워지지만, 조종사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비행기가 활주로 중심을 벗어나지 않고 달리고 있는지, 계기판에 속도와 엔진에 문제가 없는지 번갈아 가며 주시합니다. 만약 엔진이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속도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죠. 비행기가 일정 속도에 도달해 기수를 들면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그 후 비행기는 타워에서 허가한 고도까지 계속 상승합니다. 이때부터 몸은 땅의 어두움과 듬성듬성 밝히고 있는 불빛에 둘러싸입니다.



눈은 계기판을 응시하며 집중하고 있지만 어두움이 주는 두려움과 날고 있다는 설렘이 동시에 마음을 계속 자극합니다만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느낌이 저는 좋습니다. 살아있음과 지금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끊임없이 상기시켜주기 때문이죠. 무섭다고 10분만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도 마냥 야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수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상승하는 비행기가 일정 고도에 다다르면 그때서야 한숨을 내쉬고 드디어 밖을 봅니다. 매번 보는 광경이지만 볼수록 더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날았을까 저기 멀리서 해가 뜨고 있습니다. 베로비치 공항은 동쪽 바다 가까이에 있어 해가 떠오르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착륙을 준비해야 합니다. 점점 밝아지고 땅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형.. 공항이 안 보이는데요?"



경치에 빠져 안심하고 있던 정신이 갑자기 차려지니 곧 두려움이 몰려오려고 합니다. 예상했던 일이고 미리 대비해두었지만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바다와 땅이 시작하는 곳부터 어림잡아 20킬로미터 안쪽은 안개 때문에 땅이 보이지 않기 시작합니다.



"일단 접근부터 시도해 보자"  


"착륙 허가합니다. 안개가 많이 껴있는 점 유의하십시오"



착륙 허가는 받았지만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는 구름에 덮여 보이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크고 폭신폭신한 이불에 덮여있는 듯합니다. 특정 고도까지 내려갔을 때에도 땅이 보이지 않으면 착륙은 실패하게 되고 활주로와 떨어진 특정 장소로 가서 빙글빙글 돌며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해외여행을 해봤다면 한 번쯤은 여행 중에 겪었을 법한 일입니다. 저 또한 승객일 땐 왜 빨리 착륙 안 하지 하며 답답해했지만 직접 비행을 해보니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막을 수 없이 밀려오는 이 감정이 두려움인지 부담감인지 분별할 시간에도 냉철함을 유지하며 배운 것을 기억해내야 합니다. 지금 제 옆엔 교관 대신 같이 배우는 동생이 앉아있고 제가 책임자이기 때문이죠.



"형 괜찮겠죠?"


"괜찮아 배 운대로만 하자! 연료 계속 체크해주고 비상착륙 공항 날씨 확인해줘"


"연료는 아까 가득 넣어둔 덕분에 충분해요"



하강을 계속하던 비행기는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고 유리창을 물기로 가득 차 앞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땐 모든 신경과 눈은 계기판에 집중해야 합니다. 자칫 비행 착각이 생기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일정 고도까지 갔지만, 여전히 활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착륙 불가능합니다, 활주로가 보이지 않습니다"



첫 번째 착륙은 실패로 돌아가 정해진 장소에서 빙글빙글 돌며 안개가 걷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창밖에 제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땅을 무겁게 덮고 있는 이 안개는 해가 완전히 뜨면 허무하게 전부 사라집니다. 그렇게 돌기를 30분, 이 소식을 들은 교관에게 연락이 옵니다. 아마도 적잖이 제 걱정하고 있을 것입니다. 미군 출신인 큰 키의 백인인 제 교관은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제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지금 연료는 얼마나 있어?"

"비상 착륙 공항 생각해뒀어?"


"연료는 충분하고 비상착륙 공항도 생각해 뒀어!"

"한 번 더 접근해보고 안 되면 다른 공항으로 갈게!"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안개는 서서히 걷히며 익숙한 지형지물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도에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역시 활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날씨가 빠르게 회복된 다른 공항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해 착륙에 성공합니다.



"살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마지막 힘을 다해 공항 라운지까지 걸어가 큰 의자에 몸을 던집니다. 크고 발걸이까지 있는 큰 의자가 제 몸을 받아줍니다. 동생이 사다준 제로 콜라를 한 모금하면서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몸은 소파 속에 깊이 묻혀 금방이라도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폭풍 같았던 조금 전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흔하게 벌어질 일들이며 더한 일에도 담담하게 무조건 성공해야 합니다. 지금은 둘이지만 나중엔 적게는 50명 많게는 299명의 사람들을 책임질 날도 올 것입니다. ‘잘할 수 있을까..?’



비행을 시작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최악에 상황을 계속 떠올려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안전에 집착하다 보니 생긴 습관입니다. 사고는 경력과 관계없이, 나이와 관계없이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은 비행하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과거 발생한 사고 영상들을 돌려보고 그런 사고 현장을 피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계속해서 공부합니다. 때론 아찔합니다. 영상을 보고 잔해 사진을 볼 때마다 수명이 일 년씩 단축되는 기분입니다. 저는 지금 말 그대로 살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움과 자신감을 마음에 잔뜩 품은 채 나의 길을 가는 지금이 정말 행복합니다. 걸어가는 길은 참 굽이치고 험하지만 태어난 이유 즉 사명이 걸린 일을 만났다는 것,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을 배우고 있는 것, 무엇보다 이 기술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이 사실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다간 제 삶을 집어삼킬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일어난 사건이 나를 더욱 강하게 했다는 사실에 미소가 지어질 때쯤 절 부르는 소리에 깨어납니다.



"형, 해 떴어요. 이제 돌아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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