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1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을 떠나며 쓰는 짧은 일대기

by 조깡

아마 다음주가 되면 회사에 퇴사를 통보할 예정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만 8년 3개월 가량 몸 담은 내 첫 직장을 떠나게 될테지. 대학교 4학년 2학기, 별 생각 없이 ’이제 구직 활동을 해봐야지‘ 하고 첫 입사지원을 한 회사에 덜컥 합격 해버리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애증의 감정 가득한 직장을 떠나며, 이제까지 했던 일을 풀어봐야지.



Phase 1. 입사 - 지역영업

나는 15년 3월에 부산지역의 영업담당으로 입사를 했었다. (지원부서와는 전혀 달랐지만..) 2주간의 입사 교육과 1주간의 직무교육만 마친 후 바로 영업에 혼자 투입되었다. 많은 현장에서 쩔쩔매거나 해결책을 몰라 무시도 당하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동료들이 거의 또래였기에 함께 욕해가며 재밌게 다녔다. 생각해보면 가장 즐겁게 회사 다녔던 시기는 바로 이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긴 하지만...


매일 밤 9~10시에 퇴근하고, 수습 급여 받으니 뭐하는건가 싶었다. 그리고 영업을 다니면 보통 회사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나는 회사차를 배정받지 못했다. 선배들이 회사차를 써야했기에 나는 내 차를 쓰는 일이 많았는데, 그러다 너무 억울해서 회사에 있던 정말 다 부서져가는 봉고를 타고 영업을 다녔다. 지금 봐도 저 차를 어떻게 타고 다녔을까 싶은데....기본적인 환경도 만들어 주지 않는 회사에 대한 반감도 컸고, 내 상황에 대한 현타도 참 컸던 것 같다.


첫 3개월 만에 겪은 퇴사 위기. 이 당시에는 부모님의 얘기가 크게 와닿았다. ‘3개월도 못버텨서 뭘 할 수 있겠냐, 최소 1년은 다녀보고 생각해라‘ 그 얘기에 참았다. 그 한번의 인내가 8년이 될 줄은 전혀 몰랐지만...

지금도 이 때가 정말 많이 그립다


Phase 2. 부서이동 - 렌탈기획, 상담실 관리

아무튼 첫 퇴사 위기를 넘기고 입사 6개월 쯤 회사 핵심 부서라고 일컬어지는 마케팅팀으로 부서 변경이 되었다. 거기에서는 렌탈기획 업무를 했었는데 말이 좋아 렌탈기획이지 렌탈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쓰레기통 같은 곳이었고, 시스템으로 해결되지 않는 많은 일들을 수기로 해결해야했다. 거기에 고객상담실 관리자 업무를 맡아 인원관리, 고객센터 KPI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다.


렌탈기획 + 고객센터 관리 업무를 1년 정도 하던 시점에 두 번째 퇴사 위기가 찾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기획’ 업무를 하고 있기보다는 잡무를 한다고 생각을 했었고, 이 커리어를 이어갔을 경우 기껏 할 수 있는 일은 고객센터 관리자 정도 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바로 위의 사수들을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가는 삶이 일상이었던 선배들. 그리고 직무적인 미래도 그다지 밝지 않았고, 그나마 회사에서 약간 인정받는 것을 유일한 동기부여로 하여 다니는 것 처럼 보였다. 내가 생각했던 직장 생활, 직무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영업이 나았다) 그래서 그만두기 직전까지 갔었고, 친한 선배들에게는 퇴사 얘기를 거의 확정지었었다.


이 두 번째 위기는 가족과 동료들이 함께 나를 잡아주었다. 여름 휴가를 다녀오면 퇴사 얘기를 하기로 했었고, 여름 휴가를 가족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갔었는데, 여행 중에 나눈 많은 대화들이 내 마음을 다독여주었고, 지금 같이 있는 동료 선후배 같은 사람들을 어디서 만나겠느냐 라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중고 신입으로 어느정도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3년까지는 버텨보자고 마음 먹었다.



Phase 3. 직무 변경 - 상품기획

그렇게 두 번째 퇴사 위기를 넘긴 후 3달 정도 지난 시점에, 직무 변경이 한 차례 더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퇴사 위기를 넘기면 꼭 뭔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네. 아무튼 같은 마케팅팀 내에서 렌탈기획 업무 -> 상품기획 업무로의 직무 변경이 이뤄졌다. 입사 후 1년 6개월 정도만에 일어난 일인데, 상품기획 업무의 경우 회사의 가장 핵심 기능 중에 하나였고, 회사의 큰 정책을 만들어내는 시작점이자, 회사 밥벌이의 근간이었다.


이 시점에 직무 이동에 대해 내 스스로는 ‘아 내가 드디어 인정받는 건가?’ 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뭔가 보여준게 없는데 왜 나를?‘ 이라는 생각이 공존했다. 기라성 같아 보이는 선배들을 내가 과연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앞으로 보여야할 퍼포먼스에 대한 부담감이 정말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생각보다 ‘어깨 너머로 배우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붙어있으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등을 미리 보고 배울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렌탈기획 업무의 내 후임자가 빨리 구해지지 않아 초기 6개월 정도는 상품기획-렌탈기획을 겸임 하게 되었다. 진짜 힘들었다. 상품기획 업무 때문에 일과 중에는 렌탈기획 업무를 거의 할 수 없었고, 결국 그 업무는 야근을 해서 겨우겨우 메꿔갔다. 그 마저도 제대로 처리가 안되어 매우 큰 업무 구멍이 생겼었다. 빨리 구인 해달라고 얘기했지만 이 때도 아무도 내 힘겨움은 고려해주지 않았었지만 나는 참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잘 참았던 것 같다. 회사 생활도 군대얘기와 같은 속성이라 남이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해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주관적으로 난 정말 많으면서도 힘든 일을 했었고, 그에 대해서 단 한번도 내 인사권자에게 '힘들다‘, ‘못하겠다’ 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바보 같긴 했지만, 또 그 인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긴 하다.



Phase 3-1. 쩌리 상품 담당자, 경쟁력 찾기

사실 이 이후로는 쭉 상품기획 업무를 해왔기에 더 이상의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었지만, 이 직무 속에서도 나의 연대를 일정수준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눠볼까 한다. 처음 상품기획 직무를 맡게 되었을 때 위에 선배가 3명이 있었다. 다들 회사에서 중요한 상품들을 각각 맡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한명의 인원이 그 여러개의 상품을 맡아서 기획업무를 한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중요 상품이 그들의 경쟁력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러한 상품을 떼어 주지 않았다. 내가 상품기획 업무는 신삥이라 그랬을 수도 있지.


아무튼 그렇게 그 당시 ‘쩌리’로 취급 되던 제품들을 맡게 되었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상품들도 있었고 회사에서 별 관심 없는, 그냥 라인업만 갖추고 있는 상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어떠한 기술적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자사 R&D를 통해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전부 외부 협력사를 통해 제품을 조달 받는 ODM/OEM 제품들이었다.


사실 이 당시 주변 동료들이나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쩌리 제품만 하는 상.기 담당자’, ‘쟤가 뭘 얼마나 할 수 있겠어’ 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한다. 근데 내가 그렇다고 회사에 볼멘소리를 해서 핵심 제품을 맡게 해달라고 하기엔 내 스스로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서 뭘 잘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기존의 선배들과 어떤 부분에서 경쟁력을 차별화 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위에 언급했던 것 처럼 나는 중요한 상품도, 회사에서 직접 개발하는 상품도 맡지 않았기에 오히려 뭔가 더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쪽에 포커스를 많이 맞추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심 가는 제품이 있으면 직접 공장이나 업체에 방문해서 미팅을 많이 했었고, 실제로 우리회사에서 할 것 같지 않은 상품들을 꽤나 많이 소싱하고 기반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점점 ODM/OEM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이 영역에서 선배들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었다. 업체와의 관계 형성, 협상, 계약체결 등 기존의 상품기획자들이 하지 않는 업무들을 직접 핸들링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지 않아야할 일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리회사는 그런걸 크게 개의치 않았다. 모로 가든 도로 가든 서울만 도착하면 됬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니 가전회사에서 매트리스를 팔게 만들었고, 소형가전 위주의 회사에서 의류건조기를 팔게 만들었다.


처음엔 잘 할 수 있겠냐는 의심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던 사람들도 점점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고 대우가 달라졌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직전에 했던 렌탈기획에 대한 업무 이해도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상품군을 기획했어야하다 보니 회사 내에 신규 시스템을 만들어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경우에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업무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1~2년 정도 상품기획 업무 일을 하면서 내 나름의 영역을 만들어갔고, 비즈니스든 상품이든 실제로 만들어내고 런칭해내는 부분에 있어 생각보다 꽤 큰 보람을 느꼈고,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다양한 이해 관계를 많이 만들다보니 거기서 받는 스테레스도 컸지만, 그 마저도 내가 살면서 배워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기에 잘 참을 수 있었다.



Phase 3-2 부터는 다음 글에 이어서 써야지. 기대하시진 않겠지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럼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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