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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일 Mar 12. 2024

704호실의 경증환자

다정한 구원


"저것들은 죄 저래 난장을 쳐가 사람을 아주 쉬덜 몬하게 해. 낼 이면 암씨롱 업씨 집에 감서."


코로나로 병실이 부족하여, 내가 있는 7층 암병동에 일반 수술환자들이 입원해 섞였다. 전라도 여사님의 볼멘소리는 여기서 발생했다. 오전에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분이 아프다 계속 비명을 질러대다가, 오후안정을 찾고 찬송가를 틀고 흥얼거렸다. 그러곤 저녁 무렵엔 여러 지인들과 통화하며 수술 모험담(?) 따위의 안부를 나누었고, 다음 날이 아침이 되자 아들이 찾아와 말끔한 얼굴로 허리 굽혀 인사하고 짐을 싸 퇴원하는, 그런 식이 문제였다.


"아이고, 어무니 아부지야. 워쩌다 요로코롬 드런 병에 걸려부렀을까잉. 저것들은 수술하몬 끝인디이, 유방암 요것이 제일 지랄이여. 요것은 끝이 나지를 않여. 아이고, 엄마야아, 아부지야, 나 좀 데려가소."


704호실에서 그런 소동이 세 번쯤 지나가는 동안,  창가 쪽 전라도 여사님은 이런저런 억지스러운 푸념들을 이어가며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입구 쪽의 나는 수술 후 이틀내내 침대에 딱 붙어 시름시름 열을 앓고 있었다. 얼음주머니를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가득 올려놓고 있어도 자꾸만 아득해지며 속이 미슥거렸고, 잔기침이 났다. 그럼에도 전라도 여사님의 넋두리는 묘하게 아픈 곳을 들쑤셔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때, 검은 손가락이 커튼 안으로 들어오는가 싶더니, 우악스럽게 커튼을 열어젖혔다.


"아가씨여, 새댁이여? 요라고 있는 거 봉께 유방암인갑네. 우짜까잉."


검게 퉁퉁 부은, 비니아래 퍼런 눈썹문신만 남은 그녀의 푸석한 얼굴이 눈앞에 들어왔다. 나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훽 돌려 온 힘을 다해 싫다는 내색을 했다. 갑자기 잽싸진 공기가 후다닥 거렸고, 그녀가 복도에서 '형님'을 찾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성님. 성님. 요기 아가씨도 유방암이요. 머리카락 보이 까는 수술먼첨 했는갑네요.'


싫다, 참 밉다. 도대체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 것일까. 


또다시 그 우악스러운 손이 커튼을 열었다. 이번엔 여사님과 똑같은 모습을 한 '성님'이 같이 들어와 말했다. 


"아가씨, 얼른 일어나. 복도 걸어"


"......"


"그러고 누워있으면 계속 열. 빨리 나와."


나를 언제 봤다고 반말인 걸까. 결국 병원도 다정함이라곤 조금도 없는 곳이구나 생각하니 속이 안 좋았지만,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단호한 음성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내 등에 빨대를 꽂고 신경질만 부리던 임원들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나보다 먼저, 더 많이 앓고 일어난 사람만이 진 울림이 있었다. 어지러움이 안정되자, 몸에 달린 줄들을 정리하고 슬리퍼를 신었다.


'돌돌돌돌......'


복도엔 트트랙 선수들처럼 세 명이 일렬로 딱 붙어 뱅뱅 돌고 있었다. 맨 앞 성님, 그 뒤에 라도 여사님, 맨 뒤에 옆방 60대 분이 나이 순서대로 언니성님 해가며 걷고 있었다. 주춤거리며 서서 피주머니를 옮겨 넣는 나를 보고 성님이 웃으며 말했다.


"수술이 제일 쉬운 거야. 나 봐. 크다고 항암부터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링거걸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내자리-그녀들의 꽁무니-에 붙어 걸었다. 저녁 먹을 즈음엔 미열만 남았고, 기침도 잦아들었다.


저녁밥을 물려놓은 내 침로 또다시 난입한 여사님 얼른 휴게실로 가자고 호들갑이었다. 따라가 보니, 7층 암병동 환자들이 가득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유재석이랑 이동휘가 한참 웃기고 있었고, 원슈타인이라는 아이가 풍성한 뽀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코로나 시국이니 떨어져 앉으라고 주의를 주는데도  우리들은 단란하게 붙어 앉아 낄낄대고 웃었다. 모처럼 화목한 나의 토요일 밤이 지나고 있었다.


"아가씨, 내가 과자 사줄게"


손톱이 다 들 까맣 변한 그녀의 손가락, 그 끝에 맺혀있는 굳은살들이 나를 잡아끌었다. 


세상은 늘 더 아픈 사람이 덜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일까. 먼저 넘어진 사람이 절룩이며 다가1등을 못했다고 울분을 토하는 이를 다독이곤 하는 걸까. 대체 그녀들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웠기에 나의 작은 기침소리도 모른척하지 못했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꾹꾹 누르며 울었기에 이다지도 납작하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것일까.


'돌돌돌돌......'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것들을 충실히 나갈 것이다. 그토록 다정한 구원을 소중히 지켜내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다. 잊지 말자. 그녀들의 가냘픈 소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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