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누수로 속을 썩이던 서촌 전셋집이 새로운 임차인을 찾았다. 부동산 몇 곳에 연락해서 매물을 보기로 약속을 잡고 나니 맘이 더 초조했다. 전세난이라고 매물도 거의 없고 날짜도 촉박한데, 진료 대기가 유난히 길었다. 그런데 별안간 암선고를 받았고, 다음 날부터 2주에 걸쳐 전이 검사 일정이 주르륵 잡혔다. 집을 찾아 헤매는 날들에 끼어든 검사들은 대체로 공복을 요구하기에 몹시 피곤했다. 찾아도 찾아도 날짜가 맞는 집이 나타나지 않아 속이 탔고, 치솟은 전셋값은 서러웠다. 그렇게 극성맞게 일했음에도 나는 엄마의 그 시절 가난한 모습과 닮아있었다.
갑작스레 4월 28일 입원하라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수술방식과 퇴원 날짜, 수술 후 치료 일정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수술 방법은 다음 주 MRI 등 추가 검사결과에 따라 결정되며, 이후 치료방법은 수술장에서 떼어낸 병변의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입원 전에 집을 구해두어야 무사히 이사를 나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입원 전 날, 중개업자에게 속는 줄 알면서도 개발새발 계약서를 작성했다. 어차피 채송화 씨앗 만큼의 따스함도 준 적 없었던 집들, 그저 누수만 없으면 된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날 밤, 여행이라곤 가본 적 없는 주황색 캐리어에 수건, 빨대, 휴대폰 거치대 같은 허섭스레기들을 가득 챙겼다. 나는 너무 지쳤고, 이제 밀린 잠을 실컷 잘 수 있으니 다 괜찮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왼팔 사용금지'
입원실에 도착하니, 침대 머리 벽에 주의 문구가 붙어있었다. 수술할 왼쪽에는 수액이나 채혈, 혈압 측정을 하면 안 되기에. 짐을 놓고 내려가 검사 몇 가지를 하고, 제거할 병변 부위에 낚싯바늘 같은 클립을 심기 위해 초음파 실로 갔다. '뿌드득' 하고 클립이 들어가는 느낌이 났다. 생살을 꿰는 아픔에 찡그리며 일어서려고 했는데,두 개를 더 꿰고 나서야 놓아주었다. 정수리가 싸했다.
'MRI에서 무언가 더 발견되었구나......'
'양팔 사용금지'
입원실에 돌아오니, 침대 머리의 문구가 바뀌었다. 이내 간호사가 들어와 발에 주사 바늘을 꽂아야 한다고, 좀 아플 거라고 했다. 발등과 발목 안쪽에 한 번씩 실패하고는 다시 발등에 도전하는 간호사는 연신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난처해하는데,나는 아픔을 몰랐다. 온통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엔톨핀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왼쪽 부분절제 예정이었지만, 왼쪽 추가 의심 조직이 암일 경우 서로 거리가 멀어 전절제 하게 됩니다. 우측 조직도 암일 경우에는 유방을 살려두는 것이 의미가 없어 양측 전절제합니다."
하고는 담당의가 여러 장의 동의서를 내밀었다.
의미.
부모와의 관계도,연봉계약서들도,늘 이런 식이었다. 내 삶의 의미와 가치는 그들이 정했고, 그에 맞춰 유용한부분만 남기도록 끊임없이재단했다.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는 쓸모 있어야 했고, 끝없이 과로하며 증명해야만 했다.그러곤, 많은 밤도려낸 곳들이 욱신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다.슬픔은 이런 틈을 찾아내어 스며들어 고였고, 어느 순간 나를 아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는 진즉에 도망쳤어야 했다. 지금이 아닌그때. 그들이 내 젊음을 마구 가져다 써버리도록 해선 안되었다. 나의 소망들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끝까지 지키고 키워나갔어야 했다.
혈관을 찾은 바늘 위로 주렁주렁 매달린 병들에서 '똑똑' 방울이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슬픔은 조용히 스며드는데, 물방울은 왜 저렇게 맺히는 것일까? 얼마나 사무치기에 동그랗게 몸을 말아 소리 내어 떨어지는 것일까?
밤새 수많은 물방울이 맺혀지고 떨어지는 한기에 몸이 떨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뒤척이고 뒤척여도 위안 삼을 추억거리 하나없어 자꾸만 소스라치게되는 고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