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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일 Feb 20. 2024

1번방 의자로의 인계

침윤

"암이네."


"......"


"암이. 밖에서 기다리면 간호사가 설명해줄 거에요."


의사는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멀겋게 일어나 우글대는 사람들 속에 앉았다.


"OOO님, 1번방으로 들어오세요."


"아니 왜 혼자 오셨어요?이거 검사도 엄청 많고 복잡한데 보호자랑 같이 오셨어야죠."


"......"


"일단, 여기 싸인하시고"


"그, 보호자가 없는데요...암인지 몰랐어요."


"네. 여기, 설명들었음.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여기 사인이요"


"......"


"바로 1층 내려가셔서 여기 적혀있는 검사들 일정 꼭 잡고 가세요."


'퍽'하고 세상의 두꺼비 집이 내려앉았고, 나는 머리채를 잡힌 채 뜯겨 벽 너머로 던져졌다.




이내 여기저기 칼로 죽죽 그어지고, 도려내졌다. 그러고는 마른 우뭇가사리 같은 주둥이와 혈관으로 빨강 노랑 하양의 약물들을 끊임없이 욱여넣었다. 나는 거무죽죽하게 부풀었고, 타들어 갔다. 결국 애써 키워낸 것들이 머리맡에 뭉텅뭉텅 빠지고 말았다.


이 모든 허락은 그날 1번방에서의 사인들로 갈음했다.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 더 나빠져도 변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 캔버스화를 던져 높은 나뭇가지 끝에 걸어보려던 바램이 덜컥 걸려드는 순간, 바로 속상해지고 마는 그런 일들이.


내 삶을 살고자 복마전 같은 증권사 애널리스트 생활에서 피투성이로 도망쳤는데, 고작 요만큼에서 붙잡혀 아무데나 던져졌다. 이 모든 것은 느닷없이 벌어진 것일까, 아니면 차곡차곡 내 뒤를 밟아오고 있었던 것일까? 눈치없는 나는 모든 것의 경계가 의심스럽고 헤깔렸다.


여기 암환자의 일상은 벽 너머 살아가는 이들의 울림에 현기증을 느끼는 것과 같다. 밤이면 부스스 손을 내밀어, 그들이 마구 내다 버린 시간을 주워다가 내 갈피에 소중히 넣는다. 그러고는 파리한 몸으로 홀로 깨어 그것들을 부여잡고 매만지다 이내 울고 만다.


내밀어도 내밀어도 따스함은 닿지 않고,

세상의 아늑함과 추억은 아득히 멀리에 있다.


나는 그저 마음속 가난에 기대어 누운 환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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