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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일 May 14. 2024

Epilogue

퇴사

오랫동안 버텨왔다.

조그만 잘못에도 구겨져 뒤틀어지거나 미끄러져 큰 소리가 날 것 같던 그 길에서. 힘들다고 놓으면 떨어져 와장창 깨져버릴 텐데, 차마 가족에게 그럴 수는 없다는 다짐을 키우며 괴로워했다.


어느 날, 이 모든 고통이 가족 혹은 누군가의 탓이라는 마음의 방향을 정하니, 내 죄가 없어 핑계가 더욱 견고해졌고. 확신으로 뿌리내리고 자라 나는 점점 버틸만하였다.


그러다 몇 년 전, 아버지의 처참한 교통사고와 죽음으로 미움 균열이 시작되었고, 가장 증오하는 나 자신이 쓰러져 넘어졌다. 내 오래된 증오는 부질없어졌고, 미움의 대상을 잃고 나니 사는 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졌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었다. 20년 동안 구깃거려 놓은 것은 다 쓸모가 없었다. 그 세월 봉투로 단단히 묶어 던져버리니, 나는 다시 미숙하던 고작 그 스물세 살 쯤으로 퇴행하여 수성동 계곡을 배회했다.


*


끝내 뿌리치고 나올 때, 그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안타까움과 미련이 비웃음과 저주로 변하는 묘한 순간을 보았다.

‘여자’ 임에도 ‘전문가’로 ‘대접’ 받던 ‘네’가 과연 이 바닥을 떠나 뭘 할 수 있을까?, ‘넌 곧 조아리며 돌아와 일자리를 구걸하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임원'도 못 달고 ‘포기’ 한 것은 여자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며, 그로 인해 ‘직장 여자’들에 대한 차별도 계속될 것이다......


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의 공유. 늘 그랬듯 거짓은 아니지만 진실도 아닌 묘하게 뒤틀어 나를 공격하는 말들. 빈손으로 나온 헛헛함과 그들의 화살에 연연하 아파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속의 어두운 것들과 연대하고 성장하여 나를 미치도록 괴롭다.


나는 단지 먹고사는 절박함 속에 살아왔다. 헐떡이다 마침내 전망 좋은 방에 놓였지만, 밤이 되면 혼자 남겨져 춥고 초라했다. 나의 생활은 물처럼 찼고, 계절이 지나지 않으니 방학도 없었다. 알고 있었다. 그 방의 주인이 바뀌면, 이리저리 치이다 탕비실 구석에서 누렇게 말라죽어 버릴 운명인 것도.


*


녹아서 쏟아지고 버려진 시간들을 이제야 만진.


내 증오에 가려있던 가냘픈 구원의 손길들

이렇게 엎드려 울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의 아픔과 무수한 사연들

어느 밤 퇴근 길, 길가에 앉아 울던 내게 자신의 찬 밥을 나누어 주던 시장 상인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도 꽁꽁 언 손으로 쪽파를 다듬으며 마지막 손님의 기다리던,  한단의 경건함


그 다정함을 외면하고 미움에 의지하여 버텼던 시간들에 대해 나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나는 죄를 지었다.


*




처음 기획보다 짧게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눈에 이상이 생겨서 연재를 그만두려 했는데, 격려 덕분에 완결 가능했습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며 잘 치료받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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