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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2024.3.31.

by 친절한 James


"딸깍, 탁"

"구르릉 촥, 탁탁 스르륵"

새초롬한 알루미늄 포장을

톡, 뜯고 약을 꺼낸다.

뚱한 표정의 하얀

원기둥 플라스틱 약병에서

약을 꺼낸다. 뚜껑에 몇 개 담아

한 알만 남긴 뒤 나머지는 다시

통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너희는 다음 기회에 만나자.

입에 바로 털어 넣는 조그만 알약.

쓰다. 쌉싸름한 기운이 혀에 감돈다.

먼저 따라 둔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들이켠다.

꿀꺽, 식도로 내려가는

유체 속 고체.

요즘은 캡슐에 싸인

액상형도 있다던데.

고체든 액체든

밑으로 내려가다가

어딘가에서부터 녹으며

약효를 드러내기 시작할 테지.

아픔이 해소되길 기대해 보자.


진통제(鎭痛劑, painkiller).

아픔(痛)을 진압(鎭)하고

아픔(pain)을 죽이는(kill) 약제(劑, er).

중추 신경에 작용해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며

마약성 진통제와 해열성 진통제로 구분.

수면제ㆍ마취제ㆍ진경제(鎭痙劑) 등이

보조적으로 배합됨.

진통제의 네이버 사전 정의다.


언제 진통제를 먹을까.

아플 때 먹는 약이니까

당연히 아플 때 먹겠지.

살면서 아플 때가 언제일까.

두통, 치통, 생리통, 근육통, 관절통,

그밖에 다양한 원인의 아픔이 있겠지.

몸이 아프기도 하고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어.

다른 약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진통제는 용량과 복용법을

잘 지켜서 먹어야겠다.

부작용과 주의사항도 잘 살펴야지.


한 이미지가 생각났다.

영화 <매트릭스>의 유명한 장면,

파란 약 & 빨간 약을 선택하는 순간.

파란 약을 먹으면

거짓된 세계에 머무르고

빨간약을 먹으면

진실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꾸며진 세상은 편안하지만

진짜가 아니고

진짜 세상은 아프지만

가짜가 아니다.

나는 빨간약을 고를 수 있을까,

진실을 알기 전과 후에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

비슷하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이 문장 뒤에는 이런 글이 이어진다.

"격노한 운명의 화살과 물맷돌을

마음속으로 견뎌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곤경의 바다에 맞서

끝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파란 약, 빨간약을 글로 풀어쓴 것 같다.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세상,

그 속에서 주어진 즐거움에 갇혀 살까,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런 말이 있다고 들었다.

결정은 인간이 하고

실행은 신이 한다는 말.

나는 그 반대인 줄 알았는데

삶의 주도권은 나에게 있었다.

흔히 운이나 운명을 탓하기 쉽지만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통제하는 것이기에.

지금 내가 마음먹은 생각과 행동이

앞으로 만들어 갈 내 모습을

이루어간다. 잘해보자.


약 먹다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지금쯤 위를 지나 소장으로 내려갔을까.

고통을 잠재우는 진통제처럼

일상을 쓰다듬는 글쓰기를

앞으로도 계속하기를.

오늘도 수고 많았어.


https://youtu.be/V2V2_RcHIaI?si=wuQMqsdBAK4iVAbC

진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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