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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n 30. 2024

안개를 뚫고 운전하기

2024.6.30.


흐린 날이다.

파도거품처럼 뽀얀 하늘이 점점 짙어졌다.

멀리 듬성듬성 보이던 건물들은

키가 줄더니 자취를 감췄다.

헤드라이트 불빛은

솜털 같은 앞길을 힘겹게 비췄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꿈의 물결 속을 천천히 헤쳐나갔다.

서늘하게 빛나는 밝은 어둠,

가녀린 희망 한줄기에 의지해 나아갔다.


한 치 앞도 구분이 힘든 흐릿한 도로,

인생길 같다. 수많은 계획과 예정이 있지만

항상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앞을 잘 볼 수 없을 때 과속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평소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전방을 주시하며 집중해야 한다.

언제 불확실성이 걷힐지 알 수 없지만

단념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리 짙은 안개도

해가 뜨고 바람이 불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막연한 불안은 흩어내고

앞을 잘 보며 나아가야겠다.


창문을 내려본다.

솜사탕을 닮은 그리움이

흐느적 유유자적 흘러들어온다.

멍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네.

작은 들꽃 한 송이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의 추억이 돋아났다.

한 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볼까.

산뜻한 촉촉함이 손바닥 가득 물들었다.

우유잔을 휘젓는 찻숟가락처럼

위아래로 손을 흔들어 보자.

달려오는 바람과 달려가는 나,

마주 보는 우리, 시원하네.


자연과 인공은

흰 바닷속에 모두 잠겨버렸다.

이제는 길도 보이지 않는다.

하얀 스크린 앞에 앉아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는 것 같아.

시뮬레이션 운전 연습일까.

차는 움직이고 있다.

모든 운동은 상대적이라는데

차는 움직이고 안개는 가만있는 걸까.

앞으로 간다기보다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

그럼 어디로 가는 걸까.

태초의 심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태중의 고요와 고독,

양수로 가득한 자궁 속 태아처럼

새하얀 바람에 푹 둘러싸여

저 앞 어딘가에 있을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젠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는 않을 거야.

탯줄처럼 이어진 손과 핸들, 발과 페달.

힘도 있고 생각도 있다.

차선을 바꾼다.

태동하듯 차가 반응한다.

이제는 모퉁이를 돌아 새로운 길로

나아갈 때다. 기나긴 시골길을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다.

자궁을 떠나 세상 속으로 뛰어들 때다.

태반처럼 차와 이어졌던 안개가

점점 옅어진다.

탯줄 같은 불빛도 잦아들었다.


안개는 신기하다.

감상에 잠기게 하고

추억에 빠지게 한다.

손 닿을 수 없는 구름보다

숨결 속에서 마주하는

안개가 더 신비롭다.

안개를 뚫고 운전하기는

쉽지만 어렵다.


안개를 뚫고 운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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