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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01. 2024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2024.7.1.


드디어 날이 밝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숲 속

오두막 창가에도 햇살이 걸렸다.

온 세상이 반짝이는 빛으로 깨어나고

다양한 새소리가 나무 사이로 울려 퍼졌다.

밤새 내린 비로 대지는 촉촉해지고

초록 향기가 바람 따라 집으로 새어들었다.


B는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방 한쪽 높은 문턱처럼 생긴

나무 받침대 위에 매트리스와 이불을 얹은

간이 침상이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어.

6명쯤 누울 수 있는 방은

작은 부엌과 화장실을 끼고 있었다.

침대 맞은편에는 벽 한 면이 통창이어서

숲의 속살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시간 따라 계절 따라 다채로운 풍경을 담아냈다.

통창을 따라 길고 좁은 테이블이 있어서

무언가 먹거나 뭔가를 올려놓을 수 있지.

그 한쪽 끝에는 낡은 턴테이블이

잔잔한 클래식을 읊조리고 있었다.

음악 때문에 잠을 깬 것 같지는 않은데.

잠에서 깨어 전원을 켰는지

선율이 아침을 깨웠는지 분명하지는 않았다.

아무렴 어때. 기분 좋게 일어났으니 상관없지.


B는 기지개를 켜고 창가로 가서

아침햇살에 몸을 문질렀다.

어린 볕이 살갗을 간질였다.

느린 숨결이 의식을 천천히 물들이며 일깨웠다.

적당히 따뜻해진 기운을 품고

B는 부엌으로 갔다.

이곳에 오기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꽃잎차가 투명한 꽃봉오리 모양으로

유리병에 담겨 있었다.

정신 안정과 수면에 도움을 준다고 했지.

어젯밤 늦게 여기 도착해

얼마 되지 않는 짐을 풀고

따뜻한 물에 녹아낸 꽃향이

아직 잔잔히 남아있는 듯했다.

오랜 습관대로 가글로 입을 닦고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마셨다.

아, 멈춰있던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기분.


기억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갔다.

아직 가을은 다 가지 않았고

겨울은 다 오지 않은 어느 금요일 아침,

B는 오늘도 어제처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흘러가는 시간에 발을 통통 굴리고 있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 같은 장소에서

차편을 타니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있었다.

인사를 나눌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안 보이면 무슨 일이 있나 생각은 들 정도.

이날엔 처음 보는 남녀 두 사람이

B 뒤에서 줄을 서며 이야기를 했다.

원래 다른 사람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날엔 대화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들은 여행 이야기 중 어느 숙소에 대해

큰 비중으로 말하고 있었다.

한 번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는 그곳,

B는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에서 하룻밤을 보낼 줄은 몰랐는데

그게 어제가 되었네.

B는 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했다.

여기까지 온 이유를 되짚어 보았다.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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