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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03. 2024

나는 방향을 잃었다

2024.7.3.


숨이 차오르네.

아니, 이젠 벅차다.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지쳐가.

다리엔 힘이 없다. 더 걸을 수 있을까.

서 있기도 버거워진다. 손도 떨려온다.

어떡하지.


M이 산을 내려오기 시작한 건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더 일찍 하산할 예정이었는데

출발이 늦어졌다. 왜 그리 꾸물거렸지.

정상의 탁 트인 풍경이 참 멋있었다.

가져간 간식을 너무 천천히 먹었나.

기본적인 도구들도 제대로 못 챙겼다.

산에 뜬 해는 눈 깜빡할 사이에

진다는 말도 간과했다.

먹을 것만 잔뜩 챙겨 온 가방이

점점 무거워졌다.

물을 충분히 싸 온 건 다행이야.

M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더 움직이다가는

더 못 움직일 것 같았다.

바스락, 낙엽이 부서졌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날이 금방 어두워졌다.

작은 손전등이라도 가져왔더라면.

스마트폰은 아직 통신두절이고

배터리도 간당간당해서

플래시를 쓰기도 그렇다.

보조배터리는 또 왜 안 챙겼지,

아까 작작 좀 쓸걸.

뭐,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지.

물이나 마셔야겠다.


몇 번이나 왔던 길이다.

중간중간에 조금 헷갈리는 갈림길이 있지만

지금껏 잘 다녔었잖아. 갈래마다 특징적인

나무와 지형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닌가, 아니면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빛이 가신 어둠 속에서도

길은 안다고 교만했었구나.

땀에 젖은 한숨이 나왔다.

눈을 감고 좀 쉬어야겠다.

하긴 눈을 뜨나 감으나

별 차이는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등산객이 없는 걸까.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를 때도

만난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소였으면 수십 명은 족히 지나갔을 텐데.

날이 좀 흐렸지만 그렇다고

크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어.

신발은 잘 신고 온 것 같네.


산 중턱쯤에 있는 암자는 아직 흔적도 없다.

둥글고 야트막한 바위 언덕 2개 밑에

연리지가 자라는 갈림길이 있는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벌써 나올 때가 되었는데.

구름 사이로 달빛이 조금 비쳤다.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걸어가 볼까.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았다.

으차, 엉덩이를 들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꽤 온 것 같네.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리막보다 평지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오르막도 종종 나왔다.

이러다 영영 길을 잃는 건 아닐까.

언젠가 새벽 등반에서 멧돼지를 마주친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때 정말...

조잡한 합성음과는 차원이 달랐던,

발을 얼어붙게 한 냉혹한 으르렁거림,

M은 덜컥 겁이 났다. 걸음이 빨라졌다.

제발, 길을 찾아줘. 나는 방향을 잃었다.


나는 방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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