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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작가연습 프로젝트 7
26화
나는 방향을 잃었다
2024.7.3.
by
친절한 James
Jul 3. 2024
숨이 차오르네.
아니, 이젠 벅차다.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지쳐가.
다리엔 힘이 없다. 더 걸을 수 있을까.
서 있기도 버거워진다. 손도 떨려온다.
어떡하지.
M이 산을 내려오기 시작한 건
오후 4시 무렵이었다.
더 일찍 하산할 예정이었는데
출발이 늦어졌다. 왜 그리 꾸물거렸지.
정상의 탁 트인 풍경이 참 멋있었다.
가져간 간식을 너무 천천히 먹었나.
기본적인 도구들도 제대로 못 챙겼다.
산에 뜬 해는 눈 깜빡할 사이에
진다는 말도 간과했다.
먹을 것만 잔뜩 챙겨 온 가방이
점점 무거워졌다.
물을 충분히 싸 온 건 다행이야.
M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잠깐 쉬기로 했다.
더 움직이다가는
더 못 움직일 것 같았다.
바스락, 낙엽이 부서졌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날이 금방 어두워졌다.
작은 손전등이라도 가져왔더라면.
스마트폰은 아직 통신두절이고
배터리도 간당간당해서
플래시를 쓰기도 그렇다.
보조배터리는 또 왜 안 챙겼지,
아까 작작 좀 쓸걸.
뭐, 지금 후회해도 소용없지.
물이나 마셔야겠다.
몇 번이나 왔던 길이다.
중간중간에 조금 헷갈리는 갈림길이 있지만
지금껏 잘 다녔었잖아. 갈래마다 특징적인
나무와 지형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닌가, 아니면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빛이 가신 어둠 속에서도
길은 안다고 교만했었구나.
땀에 젖은 한숨이 나왔다.
눈을 감고 좀 쉬어야겠다.
하긴 눈을 뜨나 감으나
별 차이는 없었다.
오늘따라 왜 이리 등산객이 없는 걸까.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를 때도
만난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소였으면 수십 명은 족히 지나갔을 텐데.
날이 좀 흐렸지만 그렇다고
크게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어.
신발은 잘 신고 온 것 같네.
산 중턱쯤에 있는 암자는 아직 흔적도 없다.
둥글고 야트막한 바위 언덕 2개 밑에
연리지가 자라는 갈림길이 있는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벌써 나올 때가 되었는데.
구름 사이로 달빛이 조금 비쳤다.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시 걸어가 볼까.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았다.
으차, 엉덩이를 들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꽤 온 것 같네.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리막보다 평지가 더 많은 것 같은데.
오르막도 종종 나왔다.
이러다 영영 길을 잃는 건 아닐까.
언젠가 새벽 등반에서 멧돼지를 마주친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때 정말...
조잡한 합성음과는 차원이 달랐던,
발을 얼어붙게 한 냉혹한 으르렁거림,
M은 덜컥 겁이 났다. 걸음이 빨라졌다.
제발, 길을 찾아줘. 나는 방향을 잃었다.
나는 방향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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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학생&공무원입니다. 『독서희열』을 썼습니다. 삶을 느끼고 담아내는 글로 행복을 잇는 마음을 함께 나누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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