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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04. 2024

그녀는 머리에 꽃을 꽂았다.

2024.7.4.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지평선에 걸린 기다란 언덕이

초록 물결로 춤을 춘다.

알록달록 봄꽃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아름답고 평안한 풍경.


그녀는 올해도 이곳을 찾았다.

완만한 언덕은 높지 않지만

탁 트인 들판을 마음껏 둘러보기 충분했다.

언덕 위에는 곱고 단단한 모래로 다진

작은 평지와 햇살을 머금은

나무 벤치가 있었다.

여기에 앉으면 윤슬로 뒤덮인

굽이치는 강물이 내려다 보였다.

물결 따라 바람길 따라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추억도,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리던 순간도

물 위에서 방긋 피어났다.


한낮이지만 볕이 따갑지 않았다.

아직 계절은 봄의 언저리를

사부작거리며 맴돌았고

벤치 옆에는 아름드리나무가

그늘막을 만들어 주어

눈이 부시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딱 한 그루의 나무,

그 사람처럼 듬직했다.

그녀는 벤치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맨질맨질한 땅 위에서

들풀이 돋아나고 있었다.

며칠 전 밤에 비가 많이 왔는데

그 덕분일까. 구릉지와 평지의

경계가 무너지고 맨땅에

작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빗방울 소리가 잔잔한 피아노 음처럼

이곳을 부드럽게 울렸겠지.

달빛이 지휘하고 바람이 협연한

비의 합주곡.

대지는 쏟아지는 영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드러내며 감정이 솟아났겠지.

생의 마지막 순간은 오지 않을 것처럼,

마음껏 웃으며 기쁨을 쏟아냈을 테지.

그 끝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도 말이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나무 둘레를 걸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눈앞에

드넓은 풍경이 드러났다.

들과 강과 산을 지나

지평선 너머 하늘이 활짝 펼쳐졌다.

그리움이 흩날려 놓은 새털구름이

희끗희끗 돋아났다.

구름 끝자락을 쓰다듬어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 팔을 뻗어볼까.

폭신한 감촉은 너의 감성을 닮았을 거야.

이제껏 잘 이겨냈다고, 멋지고 대단하다고

고운 손길로 쓰다듬어 줄 수 있을까.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머리 위로 들었던 손을 내렸다.

눈꺼풀을 내렸다.

눈물이 내렸다.


중천에서 빛나던 해는

산중턱에 걸렸다.

기울어진 햇빛 따라

그림자도 따라갔다.

벤치는 그늘에서 나와

미지근한 온기를 쬐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그늘 속에 있었다.

나오고 싶은데 나오고 싶지 않았다.

망설여졌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작은 흰 꽃 몇 송이가 띄었다.

벤치 맞은편에서 햇살을 머금은 꽃,

토끼풀 같다. 귀솜, 귀여운 솜털,

그가 불러주던 애칭.

솜털 같은 토끼풀이네.

너와 함께 할 행복,

그 행운을 약속해 줄 수 있니.

그녀는 머리에 꽃을 꽂았다.


그녀는 머리에 꽃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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