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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05. 2024

3일 동안 비가 내렸다

2024.7.5.


아, 촉촉해.

Y는 눈을 떴다.

아침이 먼 새벽,

빗소리에 잠을 깼다.

누워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황톳빛 나무틀 반투명창과

스테인리스 투명창은 반쯤 열렸고

펄럭이는 방충망 너머

어두운 빗방울이 후드득 내리쬐고 있었다.


3일 동안 비가 내렸다.

비는 낮에는 조금 약해졌다가

밤중에 많이 내렸다. 야행성인가.

열대야에 시달린 날들이 잠시 멀어졌다.

냉방 시설이 변변찮아서 열린 창문과

작은 선풍기에 의존했던 시간이 희미해졌다.

잠들기 전 거짓말처럼 다가와

자장가처럼 들리는 밤비가 반가웠다.

번개나 천둥 없이 조용히, 꾸준히 내리는

그런 모습이 정겨웠다.

매일 창가로 찾아와 주어서 고마웠다.

운동하기 전 워밍업 같다고 할까.

불을 끄고 침대에 기대앉아 밖을 보면

힘든 하루가 가라앉았다.

수면 전 비와 함께하는 마음 준비라고 할까.


3일 동안 Y의 취침 시간은 점점 늦어졌지만

잠은 오히려 더 깊게 잤다.

비와 함께라서 외롭지 않았다.

비가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비에서 바다의 향기가 나고

하늘의 온기가 느껴졌다.

지붕을 차르륵, 땅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는 스타카토.

악보에서 앞뒤음을 연결하지 않고

또렷하게 끊는 듯 연주하라는 말이다.

반박자는 소리 내고 반박자는 쉬라고 하네.

그래, 나도 밖에서는 일했지만

집에서는 쉬고 있어.

물이 흘러 바다로 흘러가듯

수많은 분리가 맞닿으면

다시 하나로 이어지지.

움직임과 멈춤, 잠듬과 깨어남이

한줄기로 연결되는 거야.

꿈길이 유유하다.


Y의 방은 다가구 주택 3층 원룸이었다.

창문은 탁 트여서 먼 산도 볼 수 있었다.

위층은 옥상이라 층간 소음 걱정은 없었다.

Y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옥상의 배수 시설을 막으면

이렇게 비가 계속 내릴 때 수영장이 되지 않을까.

꽤 괜찮은 물놀이장이 될 것 같은데.

다 놀고 욕조 마개를 뽑듯 물은 빼면 어떨까.

피식 웃음이 났다.

1층과 2층 천장은 장마 때마다

물이 새고 가끔 전기도 나갔는데

그랬다가는 이 집 전체가 난리 날 거야.

아무리 물을 좋아해도 물 새는 방에서

살기는 어렵지. 다행히 Y방에는 누수가 없었다.

다음 달에는 태풍이 온다고 하네.

태풍과 함께 내리는 비는 아주 세차지.

Y는 그런 비는 싫었다. 요 며칠 만났던

그런 비가 좋았다.

내색하거나 생색내지 않고

친근한 느낌을 심어주었던 비.

Y는 그 사람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할 수 있을까. 보고 싶다.


3일 동안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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