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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ul 07. 2024

예전에 ___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2024.7.7.


삶에서 집이 갖는 의미는 크다.

단순히 먹고 자는 곳이 아니다.

일상을 보듬는 편안한 쉼터이자

삶을 이루는 보금자리다.

집은 꼭 그래야 한다.

또 집은 사는(Buy) 곳이자

사는(Live) 곳이기도 하다.

욕구와 욕심이 욕망하는

욕지기 터가 되기도 하고

사람과 사랑이 사근대는

사원이 되기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 장소, 한 집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집이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평생을 품어주는 자궁이자

하나의 인격체다.

여기에 깃든 애정과 애착은

다른 사람이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부모 같은 존재라고 할까.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보통 살면서

여러 곳에 자리를 잡았다가

다른 곳으로 수차례 옮겨간다.

여기서 짐을 싸서

저기서 다시 풀고

다시 짐 싸기를 반복한다.

짐이 모이고 흩어지는 사이사이

꿈이 자라고 희망이 커진다.

집에는 삶의 추억이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워진다.

머물고 떠나는 순환의 시간,

품고 놓는 반복의 세월 속

집은 인생을 담고

인생은 집을 닮는다.


예전에 공동주택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연립주택보다는 좀 더 큰

언덕 위 작은 아파트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았던 작은 공간,

작은 안방과 더 작은 방,

하수구 달린 부엌, 연탄구멍 2개,

가끔 무서웠던 복도 공용 화장실과

방의 요강이 떠오른다.

재첩국 또는 찹쌀떡을 파는

행상 목소리가 낭랑했던 좁은 통로,

단지 앞 나무가 울창한 공터에서

또래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울리던 나날이 생각난다.

할아버지 심부름 값 1,000원에

800원은 막걸리, 200원은

내 과자와 맞바꾸던 구멍가게.

달걀 프라이를 잘 먹던 계란 킬러,

꿈은 없었고 절망도 없었던 막연한 그리움,

몸은 어렸고 마음은 더 어렸던 시간,

이제는 흔적조차 사라진,

높다란 주상복합아파트가 우뚝 솟은 곳.


시골에 살기도 했다.

사방 논밭이 둘러싼 풍경,

겨울이면 두꺼운 얼음이 쌓인 호수,

넓은 김 한 장에 밥과 양념간장, 계란말이를

넣어 만들어 주신 일자형 김밥,

밥 한 공기 분량 김밥 한 줄을

우적우적 서너 개씩 베어 먹었다.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 왔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가족이

새로운 출발을 했던 곳.

출근길 라디오 사연에

잊힌 애틋함이 눈물로 솟아났다.

사무치는 사모가 사그라들지 않던 순간,

그때와 지금이 교각처럼 높이 섰고

그 사이에 현수교 줄처럼 매달린

추억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천사의 숨결, 남겨진 사랑,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유.

예전에 그곳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곳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밀물처럼, 오늘처럼.


예전에 ___에 살았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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