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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작가연습 프로젝트 7
25화
야간열차를 타고
2024.7.2.
by
친절한 James
Jul 2. 2024
바다의 감촉을 머금은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갓 구운 치아바타빛 햇살이
기차역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1월의 여름은 따사로웠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고
서둘러 트램을 타길 잘한 것 같다.
늦지 않게 표를 끊어 기차에 올라섰다.
그해 첫 달, W는 남반구에 있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여정 속에
해변 모래알보다 많은
희망과 걱정을 쓰고 지웠다.
적도를 지나온 지 한 달이 지나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자
W는 여행을 계획했다.
비행기보다 기차가 좋겠어.
비행기는 집으로 돌아갈 때
한 번만 더 타기로 하고
이번엔 조금 천천히 다녀보고 싶네.
자금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대신 시간을 촘촘하게 채워두고 싶었다.
시드니행 7시 30분 기차가
곧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기분 좋은 부산함이 객차를 채워갔다.
W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새롭고 서툴렀지만 정들었던
멜버른을 잠깐 생각했다.
저녁마다 알뜰한 식탁과
풍성한 이야기를 차려 준
홈스테이 주인 할머니가 떠올랐다.
몸은 좀 불편했지만 당당함이
매력적이던 주인 아들도 있었지.
정원이 있는 주택, 여유 담긴 공원,
참 좋았다. 이제 잠시 헤어질 때가 왔다.
기차역이 조금씩 뒤로 움직였다.
철도를 따라 설렘이 달렸다.
드넓게 펼쳐진 이국의 자연 풍경이
차창으로 날아들었다.
몇 개의 역에 멈춰 서자
하늘은 노을이 되고
해는 달이 되었다.
도시의 인공빛은 모두 과거로 빨려갔다.
빛 하나 없는 새카만 암흑이
지평선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노을빛에 취해
잠들었던 W는 눈을 떴다.
창밖은 잠들어 있었다.
옆자리 남미 아저씨도 잠들어 있었다.
가지런한 콧수염이 새근새근 하네.
화장실로 가려던 눈길이
창밖에 멈췄다.
순간 숨이 멈췄다.
이렇게도 많은,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작고 예쁜 별빛들이
나지막이 세레나데를 들려주는구나.
W는 지금껏 이런 밤하늘을
본 적이 없었다.
멀고 먼 은하계에서 이곳까지
날아온 빛의 향연은
우주의 뉴에이지가 아닐까.
오카리나보다 맑고
오보에보다 따뜻한
오, 너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아.
기차는 움직이는데 하늘은 그대로네.
나는 변하는데 너는 여전하네.
별에 취한다는 게 이런 걸까.
한동안, 정말 꽤 오래
W는 은하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대로 해가 뜨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이 감동에 불타게 하소서.
시간이 멈추고 여행이 멈추길,
이 순간에 머무르기를
오랜만에 바라보았다.
W는 야간열차를 타고
아련한 꿈의 밤하늘을 달려갔다.
야간열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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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뚫고 운전하기
24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25
야간열차를 타고
26
나는 방향을 잃었다
27
그녀는 머리에 꽃을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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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학생&공무원입니다. 『독서희열』을 썼습니다. 삶을 느끼고 담아내는 글로 행복을 잇는 마음을 함께 나누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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