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에 숨어 있었다

2024.9.12.

by 친절한 James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B는 소리쳤다.

"네네, 충분히 이해해요. 그럴 겁니다. 괜찮아요."

C는 여유로운 웃음으로 B를 다독였다.

"아시겠지만 괴롭히려는 건 아니고요,

그저 그때의 상황을 말해주면 됩니다.

부담 갖지 말고."

B는 눈꺼풀을 질끈 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촉촉한 눈가를 닦고 앞으로 숙였던

상체를 소파에 기대며 입을 열었다.

"전 전설을 믿지 않았어요.

어릴 적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얼마 전까지 엄마의 당부도

그저 동화쯤으로 여겼죠."

"그랬군요."

"누나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지만

저는 코웃음을 치기 바빴죠.

그날 전까지는..."

B는 다시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들썩이는 어깨에서 감정이 솟구쳤다.


그래, C는 시간을 더 두기로 했다.

B가 마지막 상담자라 다행이다.

어른이 아닌 아이가,

민감할 시기에 그런 일을 겪다니...

한참 지나 B가 말을 이었다.

이건 30년 가까운 C의 상담 경력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비 오는 밤이었죠.

부모님은 급히 읍내 병원에 가셨어요.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은 아버지의 환상통이

심각해져서요. 가끔 그러셨는데

그날따라 너무 고통스러워하셨어요."

"아버님은 어떻게 다치셨나요?"

"저도 여쭤봤는데 젊으셨을 때

교통사고라고 하시고 잘 대답을 안 해주셨어요.

어머니도 쉬쉬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그랬군요."

"제가 7살 때 할아버지가 집에 오셨어요.

누나랑 저를 보러 왔다고 하셨죠.

저는 할아버지가 참 좋았어요.

잘 놀아주시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해주셨죠.

그런데 언젠가, 아마도 할아버지가 오신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밤중에 거실에서

할아버지가 부모님과 크게 다투는

소리가 들렸어요. 한 집이었지만

저희 방은 벽과 복도로 별채처럼

구분되어서 정확히 어떤 말인지는

못 들었어요. 누나도 그런 것 같았고요."

"혹시 짐작 가는 건 없나요?"

"아마도... 역시 할아버지 말이 맞았어요..."


B의 가족은 산골에 살았다.

집 뒤로는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광활한 숲이 굽이치며 펼쳐졌다.

B와 누나는 자연이 좋았다.

마음껏 뛰놀 수 있어서 매일 신났다.


"누나는 참 잘해주었어요.

항상 양보해 주고 잘 챙겨줬어요.

그날도 나 때문에 죽은 거예요."

B는 다시 울먹였다.

그래, 아직 어린아이야.

C는 마음이 아팠다. 안쓰러웠다.

B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쓰다듬었다.


그날 B는 지하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누나가 마지막으로 가져다준 애착 인형

'라쿠'를 꼭 끌어안으며 B는 두려움에 떨었다.

지하실 철문을 꼭 잠그고 귀를 막았다.

B의 이야기는 C도 언젠가 들어봤다.

그건 그저 옛이야기가 아니었다.

실화였다.


나는 지하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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