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6.
기억하나요, 지난날을?
뭐,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시간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고
더 진해지는 기억이 있고
찰나에도 텅 비어버려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도 있다.
소중한 시간, 아름다운 추억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문다.
며칠 전 점심 메뉴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숫자를 잘 기억하는 편도 아니지만
장소에 대해서는 그나마 좀 나은 듯하다.
이런저런 이벤트는 안 잊으려고 애쓴다.
이처럼 인간은
무언가를 기억하는 존재이자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존재다.
전자는 대상에 대한 능동성을,
후자는 대상으로부터의 수용성을 전제로 한다.
살면서 간직하고, 잊고, 다시 떠올리는
수많은 기억, 우리는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타인과의 관계성도 확인한다.
기억을 잃는다는 건
때로는 필요하지만
대체로 서글픈 일이다.
각종 퇴행성 뇌질환은
본인은 물론 주변의 삶도 앗아간다.
기억할 수 없고 기억될 수 없는 삶은
어디에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새벽 없는 아침을 상상할 수 있을까.
'당신이 가진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
밀림 속에서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듯
기억의 동굴을 헤집고 더듬거려 보았다.
과거로, 과거로 더 깊은 어둠을 지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샘물에 닿았다.
저 밑으로 들어가 보자.
숨을 참고 아래로 가라앉는다.
빛 한 조각 보이지 않는 고요의 유체 속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다.
방향을 알 수 없는 흐름이
몸을 스치고 어디론가 흘러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희뿌연 온기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숨이 가쁘지는 않고 오히려 편안하다.
한번 눈을 떠볼까.
눈꺼풀은 열렸지만 어둠은 더 짙어졌다.
뭔가 밝은 것 같았는데 뭐였을까.
저 멀리 작은 빛이 반짝인다.
점처럼 작은 그것은 빛줄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떤 글자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무슨 그림을 본뜬 것 같기도 하다.
움직이고 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사뿐 다가오며 빛살을 일렁거렸다.
무엇일까. 최초의 기억일까.
눈을 뜨니 현실이다.
아득한 애수가
팔랑거렸다.
지긋한
미소
한 방울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