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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an 29. 2024

'나는 이역만리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2024.1.29.


친애하는 내 사랑에게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머릿속에는 전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인데

내 뜻을 담을 지면이 한정적이라

못내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금 여기는 다른 곳에 비해

물자 보급이 괜찮은 편인데도 말이죠.


그곳은 더위가 누그러들며

풍성한 수확의 계절로 들어서고 있지요?

가을은 함께 만든 추억을 참 많이 담은,

우리가 좋아하는 계절이잖아요.

풋풋한 마음이 국화처럼 피어나

단풍보다 고운 감정으로 물들다가

시간이 무르익으며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것도 가을이군요.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기쁨과 감사가

벅차올라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져

떠나지 않는답니다.

여기는 지독한 건조함이 외로움보다

더 사무치네요.

햇살이 가시처럼 내리쬐는 한낮에는

몸이 볏짚처럼 바싹 마르는 것 같아요.

그래도 물은 잘 마시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당신 요즘 잠은 잘 자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떠날 날이 다가오면서

당신은 불안감에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지요. 당시에는 기약 없는 떠남이라

더 그랬을 거예요. 당신에게 세 아이를

남겨두고 공항으로 향해야 했던

발걸음이 미처 떨어지지 못하고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눈물 흘리던 날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곳이야 변수가 좀 있다 보니

틈틈이 잠을 자고 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답니다.

국내에서는 이곳에 대해 어떻게

알려지는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여기 환경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더 나은 삶을 그리기 위한

의지가 모인 곳이라

그런 것 같네요.


푸르른 그리움이 샛별을 따라

침실 창가에 아른거리면

그대를 떠나온 날이 하루 더해졌음을,

그대를 마주할 날이 하루 더 가까워졌음을

알게 됩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큰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해요.

이건 일정이 정해지는 대로

다시 편지를 쓰도록 할게요.


걱정은 걱정한다고 사라지지 않지만

나에 대한 그대의 걱정을 생각하면

더없이 미안해지고 가슴 아파옵니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은 항상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답니다.

사막의 밤하늘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

그 누가 알았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그보다 더 반짝이며 우리를 이어준답니다.


나는 이역만리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부디 이 서신이 이곳에서

그대에게 부치는 마지막 소식이기를,

이제 얼굴을 마주하며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날이 새도록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마음 온전히 담아

사랑합니다.


친애하는 나의 사랑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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