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30.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또 떨려온다.
그게 사실일까 했는데
하나씩 돌이켜보면
틀린 말이 없다.
모든 상황이 들어맞았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살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벌써 1년 전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이었지.
이른 아침부터 작은 고모가 연락을 했다.
지금 할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어서 와야 할 것 같다고.
함께 사업하는 부모님은 해외 출장 중이라
집에는 대학생 외동인 N 밖에 없었다.
N은 미취학 아동일 때 2년 정도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땐 부모님과 살 수 없는 처지랬는데
일 때문이라고, 다른 사정은 듣지 못했다.
할머니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셨다.
할아버지는 N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다.
장남은 30세 무렵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20년 동안
별다른 움직임 없이 병석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N은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쳤다.
여기서 400여 Km 떨어진
바닷가 끝 마을로 가려면
뭐가 제일 빠를까.
운전 못하는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버스나 기차는 늦을 것 같아.
N은 택시를 탔다.
지금 비용은 중요한 게 아니야.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차가 있을까 했는데
10여분 만에 배차를 받았다. 다행이군.
제발 가는 동안 별다른 말을 안 걸었으면
했는데 딱 그런 운전자가 차를 몰았다.
2번의 휴게소를 빼면 쉼 없이 달려
아련함 속 익숙한 그 집에 도착했다.
복숭아 솜털 색을 닮은 추억이
바람결에 흩어져 갔다.
안방에는 할머니가 작은 침대 위에
덜 마른 이불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작은 고모와 고모부가 나란히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두 분이 할머니와
같은 동네에 살며 어르신을 보살펴
참 다행이었다.
N이 할머니에게 다가서자 고모 내외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렇게 잠깐 할머니와 단둘이 있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N의 눈앞에는
한 세기를 지나온 육신이 가지런했다.
기력이 다한 눈꺼풀 파르르 떨렸다.
숨 쉬기가 힘겨워지는 듯했다.
100세 가까이 잔병치레 없이 사셨는데
세월을 이길 수는 없나 보다.
병원에서 어쩔 수 없이 고인의 길로
떠나보내는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N은 할머니 손을 잡아드렸다.
어릴 적 키워주실 땐
제법 통통한 손이었던 것 같은데
뼈마디만 남도록 바싹 말라버렸네.
N의 온기가 닿자 할머니는
눈을 겨우 치켜뜨고 입술을 옴짝달싹했다.
"네, 저 여기 있어요."
N은 얼굴을 할머니 입에 가까이 붙였다.
"우리 손주, 내가 키웠던 귀한 녀석.
이렇게 잘 커서 할미는 고맙기만 해."
"할머니..." N은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보다 더 큰 공포가 가슴을 짓눌렀다.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이제 멀리
떠나보내드려야 할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알고 있을지 몰라도...
너는 내 친손주는 아니란다."
"네? 그게 무슨..."
이게 무슨 말일까. 놀랍고 당황스러워
애통함이 넋을 잃었다.
하지만 N은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게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중에야 고모로부터 상황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경우일까.
부모님은 왜 진작 말해주지 않은 걸까.
그렇게 그날은 해가 저물어 버렸다.
짧고도 긴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