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James Jan 28. 2024

차를 몰고 해안도로 질주하기

2024.1.28.


"바다가 부른다, 달리자!"

팀장님은 신나셨다. 

물론 R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만에 와보는 동해인가. 

육지와는 한참 떨어진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면 좋겠다. 


R과 팀장은 보건소에서 일했다. 

R은 이곳에 발령받은 지 

2년 차 되는 새내기였는데

맡은 일을 차분히 하는 편이었고

팀장은 여기에서만 10년 넘은 선임으로

대외적으로 활발한 성향이었다.

업무 스타일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큰 문제없이 직장 생활을 해나갔다. 

하루는 팀장이 R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요즘 일하는데 힘든 건 없지?"

"네, 괜찮습니다."

"이제 올해도 저물어가고 곧 겨울이네. 

어디 여행 계획은 없고?"

"네, 딱히 계획 세운 건 없어요."

"혹시 이번에 구청에서 지원하는 

 국내여행 프로그램 공문 온 거 봤어?

 팀을 꾸려서 응모해 볼까 생각 중인데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아, 정말요? 어떤 내용인데요?"

원래 이런 제도가 있었나 본데 R은 몰랐다.

하긴 공문을 일일이 챙겨보지는 않았으니.

그전까지는 소규모로 진행되었는데 

올해는 지원 범위가 확대되었다고 했다. 

"한 팀에 3~5명 3박 4일 국내 일정을 짜면 

 교통비와 숙박비를 제공한다고 해.

 물론 개인 연가를 써야 하지만 

 꽤 괜찮은 기회일 것 같아."

그럼 참석해 볼까. 하긴 올해에는 

별다른 여행을 못 가봤네. 

"네, 알겠습니다. 저도 합류할게요."

"좋아, 그럼 내가 계획을 짜보도록 하지.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아, 저는 뭐..."

"생각나면 얘기해 줘. 

 일단 사람들 모으며 장소를 물색해 볼게. 

 아마 섬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


이번 행사에 직원들이 꽤 신청했나 보다. 

팀장은 예전에 구청에서 오래 근무해서

담당자들을 잘 알고 지냈다는데 

두 자릿수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지원 대상에 당첨되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팀원은 시설관리부서의 계장과 

동주민센터 직원, 총무팀 주무관

그리고 R까지 총 5명이었다.

여행 전 팀장은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 

일정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 이건 내가 간단하게 만들어 본 거야."

사업보고서 공문서식에 따라 10페이지에 

이르는 문서가 각자의 손에 쥐어졌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이번 일정은 

울릉도와 독도로 정했어요. 의미도 있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와, 이게 바로 경력의 힘인가. 

개조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가 

한눈에 쏙 들어왔다. 

언제 이런 걸 다 만들었을까. 


날씨가 꽤 좋았던 첫날 아침, 

보건소에 모여 렌터카를 타고 

동해 묵호항으로 향했다. 

평일이라 막힘이 없다. 

이렇게 드라이브만 해도 기분이 좋구나. 

운전직 계장의 실력도 대단한 것 같아.

오랜만에 배를 타니 걱정도 되고

신나기도 했다. 

괜찮을 것 같던 뱃멀미는 조금씩

짜릿함이 더해갔다.

아, 저동항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언젠가 덕적도에 의료봉사를 간 적 있는데

그땐 해경 호버크래프트를 타서

멀리가 하나도 없었는데. 

뭐, 아무튼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다. 

R의 표정도 햇살만큼 반짝거렸다. 


그들은 잔뼈가 굵은 승합차를 타고 

먼저 숙소로 향했다. 

아니, 이렇게 감성적인 곳이 있다니. 

주무관 센스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저녁 바비큐 파티도 좋았고 

밤바다 산책도 낭만적이었지. 

다음날은 독도 방문을 위한 배를 탔는데 

날씨가 뾰로통해서 하선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덕을 더 쌓아야 하나보다. 

R은 팀원들과 바다낚시를 갔는데 

신기한 체험이었다. 

주민센터 직원은 낚싯줄을 드리우는 대로 

물고기가 족족 솟아났는데 

R은 항상 빈손이었다. 

고기도 사람 가려서 낚시찌를 무는 건가. 

미끼만 쏙쏙 빼먹는 바다 생물들에게 

보시를 많이 했다고 치지 뭐.

많은 추억 중 무엇보다 

해안도로 드라이브가 기억에 남았다. 

셋째 날 관음도로 향하는 길이 참 예뻤어. 

바다색과 하늘색이 그토록 선명한 풍경,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창문을 열면 그 푸르름의 그러데이션이 

차 안 가득 물들어 버릴 것 같았다. 

손을 살짝 내밀었는데 

피부를 적시는 바람의 감촉이 상큼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암석들도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아, 어느덧 차에서 내릴 때가 되었다. 

또 어떤 경치가 기다릴까. 

기대된다. 

이전 18화 느티나무 아래 그늘에 대해 써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