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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Jan 27. 2024

느티나무 아래 그늘에 대해 써라

2024.1.27.


버스에서 내렸다.

새초롬한 눈발이 날렸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구나.

계절은 두 번 바뀌었고

마음은 평균 기온처럼 가라앉았다.

몽글한 땀방울은 

뭉클한 낙엽으로 낙화했고

쌀쌀한 들녘은 인기척을 털어내며 

고요에 잠겼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 길도 아련해지겠지.


방금 전에는 그리운 비단강이 인사했다.

다리를 건너며 다시 멀어지는데

너를 마주하면 슬슬 내릴 준비를 해야지.

여기까지 오는 직항 차편이 없어서

일단 집에서 약 1시간 15분 걸리는

C 터미널에 내렸다가 비슷하게 걸리는

B 터미널행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시간이 달라지고 공간이 바뀌는

어느 교차점 위에 두 발로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익은 가게와 도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두루마리처럼 펼쳐졌다.

나도 그 흐름에 합류할 때다.


청춘의 한 움큼을 담아낸 봉사활동,

그 연장선에서 시작했었지.

몸이 불편한 어린 친구를 만나러

주말에 한 번씩 찾아갔다.

부족한 역량,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한 번은 방송국에서 촬영하러 왔다. 

나중에 본 방송화면 좌측 상단에는 

후원 안내 표시가 있었다. 

아이 부모님은 매번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셨는데 사실 내가 더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첫 시작은 일회성에 가까웠는데

달력이 바뀔 때까지 방문하기로 했다.

작은 희망의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게 좋았다. 


처음엔 해바라기가 익어가는 여름이었다.

몇 년 전인가 했는데 벌써 10년 되었구나.

먼 옛날 남도 어느 왕국의 수도였고

지금은 자연과 문화재가 사람들을 맞이하는 고장.

높은 건물이 없어서 마음이 푸근했다. 

어릴 적 살던 그 마을이 떠올랐다. 닮았네.

첫 방문 때는 택시를 탔다.

나중에는 버스를 타기도 했다. 

기사님은 손님이 외지인 티가 팍팍 났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는 처음 오셨나 봐요. 

 이곳엔 국내 관광객도 많이 오지만 

 일본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요. 

 역사적, 정신적인 고향으로 여기니까요.

 저도 여러 명 태워보았죠. 

 어제만 해도 두 분이나 제 차에 탔는걸요."


조폐공사 앞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갔다. 

택시는 10여 분 정도 걸렸다.

도보는 30여 분 조금 안 걸린 것 같네. 

발길 닿는 풍경이 참 좋았다. 

강물을 닮아 굽이치는 언덕을 오르내리고

초록빛이 가득한 논 사이를 돌아 

파란 지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런 길을 지나는 게 참 오랜만이다. 

도심지 산책과는 달리

각가지 생각과 감정이 

잔물결처럼 피어나고 펼쳐졌다.

그냥 무언가 꾸준히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꼭 이루어지거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런 일상이 모이다 보면 우리가 살면서

몸과 마음에 쌓이는 찌꺼기를

씻어낼 수 있는 것 같아. 

마치 흐르는 강물이 

더러운 것을 정화하고 흘려보내는 것처럼.

금강을 닮은 생각이 흘러갔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어느 하루의 길, 

그때는 단풍이 물들며 하늘거렸다. 

논과 논 사이를 가로질러 

그 집으로 가는 길 중간 즈음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아마도 당산나무일까. 듬직하고 

세월의 손때가 묻은 나무평상이 

그늘 어귀에서 옹알거렸다.

그전까지는 그저 지나친 풍경이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잠깐 쉬었다 갈까.

평상에 엉덩이를 얹어보았다.

살가운 감촉이 골반을 슬쩍 문질러 댔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가을내음이 들판을 넘어 

이마를 적셨다. 은은한 시원함, 아 좋다.

이렇게 느티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으니 

<데미안>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읽고 작년에 한 번 더 봤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왜 그랬을까. 게을러서? 하기 싫어서?

눈치 보여서? 모르겠다.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을 꺼내 이어폰을 끼우고 

라디오 앱을 켰다.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전곡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 음악을 작곡해 어린 친구 

외젠 이자이의 결혼식 선물로 헌정했다.

연애의 시작에서 사랑의 속삭임과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지는 

선율의 흐름이 매혹적이었다.

감성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만 빠져들지 않는 

익숙함 속 새로움이 돋보였다.

4악장이 Allegretto poco mosso라고 

표기되는데 알레그레토는 조금 빠르게, 

포코는 조금만, 모쏘는 움직임이라고 한다. 

조금 빠르게 좀 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주라는 뜻인가 보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에도 

조금의 생동감을 더하면 

더 멋진 시간이 되지 않을까. 


이제 이 길도 마지막이다. 

마시멜로 향기가 날 것 같은 흰 뭉치들이 

논 여기저기에 웅크리고 있었다. 

온갖 푸르름이 모습을 감춘 빈 땅이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시 봄이 찾아오고

생기 넘치는 생명으로 가득할 테다. 

안녕, 잘 있기를.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으며 

아쉬운 숨 한 모금 내뱉었다.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그때까지 평온하고 따스하길 바라.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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