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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Feb 01. 2024

그녀의 단추가 풀려있었다

2024.2.1.


"아, 그래서 제 말은~"

그래, 그래서 당신 말은 뭘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줄은 알겠는데

좀 줄여서, 요약해서, 

핵심말 말해줄 순 없을까.

아니, 그냥 다른 말을 하면 좋겠어.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뭔가 어필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알겠는데

말을 많이 한다고 효과적인 건 아닌데...


J는 입가에 메마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20분 전에 했던 말 같은데

단어만 바뀌어 도돌이표다. 

하고 싶은 말이 별로 없는 건가.

말주변이 없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어휘력이 부족한 건가.

아, 진짜 엄마 친구의 아는 사람 

아들의 친구가 뭐 대수라고.

내가 그렇게 하기 싫다고 했는데,

집에 가면 엄마한테 정말 따져야겠어.


요즘 젊은 세대에서 인기가 많다는

이른바 힙하다는 동네의 소문난 맛집,

J도 친구들과 한 번 올까 했는데 

서로 날짜 맞추기가 쉽지 않고

예약하기는 더 어려웠다.

SNS 인기 해시태그라고 하는데

뭐, 나쁘지는 않네.

음식도 이 정도면 또 방문할 의사는 있다.

여기 예약해서 자리를 잡은 노력은 인정,

그런데 그거 말고는 아직 잘 모르겠네.


J는 소개팅 중이다.

이제는 혼자만 있을게 아니라

인생의 반려자, 배필을 만나야 한다며

걱정 어린 잔소리를 적립 중인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나온 자리인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긴 7년 만의 소개팅, 큰 기대는 안 했어,

그래도 아무런 바람도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실낱 같던 희망은 

그야말로 쌀쌀한 바람에 날려가 버렸다. 

뭐랄까, 그래도 이런 자리라면

대단한 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예절과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어야지.

하필 소나기가 왔는데 생각보다 많이 왔고

옷이 좀 젖었다. 이런 상태로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

상대방을 만나니 지칠 법도 하다. 

늦었으면 미안하다고 하는 게 

순서 아닌가. 연락도 없고

대충 얼버무리는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모에 대한 평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프사랑 너무 다른 거 아닌가.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소개해 준 분을 생각해 참았는데

오늘 외출하길 잘못한 것 같네.


한 귀로 들리는 소리는

반대편 귀로 술술 빠져나갔다.

눈을 마주치고 있기 힘들어

주변을 봤는데 맞은편도 소개팅 같다. 

뭐, 그쪽 상대방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매력적이긴 하네. 옷도 잘 입었고. 

그런데 저 여자는 너무 여시같이 웃는데.

옷도 왜 저렇게 딱 붙게 입은 거야. 

몸매 드러내고 싶은 건 알겠는데

터지겠다 터지겠어. 집에 옷이 없나.

이 사람은... 슈트는 바라지도 않아.

저 사람처럼 세미 정장 괜찮을 것 같은데.

셔츠는 바지 안으로 넣지 그랬어.

다리미질 힘들면 세탁소에 맡겨도 될 듯,

아니면 그냥 깔끔하게 티를 입어도 되고.


이곳과는 달리 저곳은 분위기가 좋았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뭐가 그리 좋을까. 하긴, 잘 어울린다.

"어, 저기 단추가..."

"네? 어머..."

무슨 일일까. 희희낙락 좋아하다가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J는 때를 봐서 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단추가 풀려있었다. 

아니, 다시 보니까 단추가 터졌네.

그니까 옷을 좀 잘 입고 오지. 

웃다가 단추가 버티질 못하고

자유를 찾아 뛰쳐나왔나 보다. 

아, 나도 여기서 뛰쳐나가고 싶다.


어색할뻔한 분위기는 

오히려 좋아진 듯하다. 

남자가 완전히 빠진 것 같아. 

그래, 당신들이라도 잘 되어라.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음식이 하나씩 나오는데

이걸 다 먹고 가야 할까,

지금 그냥 가야 할까.


J는 힘든 하루를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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