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어나! 빨리 일어나!"
C는 안방문을 열고 침대로 뛰어갔다.
제일 싫어하는 술냄새가 가득한 곳,
밝은 때가 손에 꼽을 만큼
거의 어둠에 잠겨있는 그곳,
그래도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아빠, 아빠, 일어나! 얼른!"
작고 하얀 두 손이 누워있는
남자의 오른쪽 어깨를 흔들었다.
수산시장의 신선한 활어도
이렇게까지 움직이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남자는 깨어날 생각을 안 했다.
수유를 마친 아기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옹알이처럼 낮게 중얼거릴 뿐.
부녀의 보금자리는 30살이 넘은
3층 빌라 건물의 반지하 주택이었다.
계단을 타고 굴러내리는 먼지보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햇살이
더 반가운 집, 방 2개에 화장실 하나,
크지는 않지만 거실도 있었다.
문에 가까운 작은방은 C가 썼다.
책과 장난감이 놓인 거실도 C의 공간이다.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는 꿈도 못 꿨지,
그래도 C는 어린이집에서 어느 아이보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씩씩한 친구였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였는지,
원래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시무룩한 시간이 많았기에.
C는 냄새에 매우 민감했다. 아빠 말로는
하늘나라로 간 엄마도 그랬다는데
우리 딸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것도 닮았을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C는 방에서 동화책을 읽다가 배가 고팠다.
뭐 먹을 게 없을까 방문을 열자
코를 스치는 냄새, 아 이건 홍삼캔디 향기.
누가 먹고 있나. 그랬다.
거실 소파에서 아빠가 사탕을 먹으며
며칠 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아빠, 뭐 먹어?" "응, 홍삼 캔디.
우리 딸도 하나 먹을래?"
"아니, 됐어. 나 그거 안 좋아하잖아."
"그래, 맞다. 향이 좀 특이하다고 했지."
C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녀는 허약한 체질에 잔병치레도 많아
어릴 적부터 가족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결혼을 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듯하다가
C를 낳고 몸은 더 약해졌다.
무엇보다 소변량이 감소했는데
급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망가져버린 장기는 회복되지 않았고
투석 한번 제대로 못 받은 그녀는
아직 걷지 못했던 아기를 두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관문틈으로 뭔가 들어오고 있다.
시커먼 연기, 매캐한 냄새가 밤안개처럼
실내를 채워나갔다.
거실에서 놀다 잠든 C는
놀라 안방으로 뛰어갔는데
아빠는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C는 부엌에서 수돗물을 컵에 담아
아빠 얼굴에 뿌렸다.
"아이고, 뭐야."
"아빠, 빨리 일어나, 큰일 났어!"
"으응? 앗 불이야!"
C의 아빠는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거실은 이미 검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안 되겠다. 화장실로 가자."
그는 C를 안고 뛰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창문을 열어젖히니 작은 공간이 생겼다.
"아빠 말 잘 들어. 아빠가 들어줄 테니까
밖으로 나가서, 거기 어디냐,
집 앞 공터 있지?
거기에 잠깐 있어. 아빠도 곧 나갈게."
"같이 갈래, 아빠."
"알았어, 먼저 나가면 아빠도 따라갈게."
해가 저물어갔다.
멀리서 119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C는 공터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집 쪽으로 몰려갔다.
C는 집에 가봐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올 거야.
술은 많이 마시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아빠니까.
이젠 홍삼캔디도 잘 먹을 거야.
그 냄새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아.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C는 눈물이 났다.
야속한 시간은 점점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