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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Feb 02. 2024

문틈으로

2024.2.2.


"아빠, 일어나! 빨리 일어나!"

C는 안방문을 열고 침대로 뛰어갔다.

제일 싫어하는 술냄새가 가득한 곳,

밝은 때가 손에 꼽을 만큼

거의 어둠에 잠겨있는 그곳,

그래도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아빠, 아빠, 일어나! 얼른!"

작고 하얀 두 손이 누워있는

남자의 오른쪽 어깨를 흔들었다.

수산시장의 신선한 활어도

이렇게까지 움직이지는 않을 테다.

하지만 남자는 깨어날 생각을 안 했다.

수유를 마친 아기처럼 알아듣기 어려운

옹알이처럼 낮게 중얼거릴 뿐.


부녀의 보금자리는 30살이 넘은

3층 빌라 건물의 반지하 주택이었다.

계단을 타고 굴러내리는 먼지보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햇살이

더 반가운 집, 방 2개에 화장실 하나,

크지는 않지만 거실도 있었다.

문에 가까운 작은방은 C가 썼다.

책과 장난감이 놓인 거실도 C의 공간이다.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는 꿈도 못 꿨지,

그래도 C는 어린이집에서 어느 아이보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씩씩한 친구였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였는지,

원래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시무룩한 시간이 많았기에.


C는 냄새에 매우 민감했다. 아빠 말로는

하늘나라로 간 엄마도 그랬다는데

우리 딸만큼은 아니라고 했다.

그런 것도 닮았을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C는 방에서 동화책을 읽다가 배가 고팠다.

뭐 먹을 게 없을까 방문을 열자

코를 스치는 냄새, 아 이건 홍삼캔디 향기.

누가 먹고 있나. 그랬다. 

거실 소파에서 아빠가 사탕을 먹으며

며칠 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아빠, 뭐 먹어?" "응, 홍삼 캔디.

 우리 딸도 하나 먹을래?"

"아니, 됐어. 나 그거 안 좋아하잖아."

"그래, 맞다. 향이 좀 특이하다고 했지."


 C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녀는 허약한 체질에 잔병치레도 많아

어릴 적부터 가족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결혼을 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듯하다가

C를 낳고 몸은 더 약해졌다.

무엇보다 소변량이 감소했는데

급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망가져버린 장기는 회복되지 않았고

투석 한번 제대로 못 받은 그녀는

아직 걷지 못했던 아기를 두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현관문틈으로 뭔가 들어오고 있다.

시커먼 연기, 매캐한 냄새가 밤안개처럼

실내를 채워나갔다.

거실에서 놀다 잠든 C는

놀라 안방으로 뛰어갔는데

아빠는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C는 부엌에서 수돗물을 컵에 담아

아빠 얼굴에 뿌렸다.

"아이고, 뭐야."

"아빠, 빨리 일어나, 큰일 났어!"

"으응? 앗 불이야!"


C의 아빠는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거실은 이미 검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차오르고 있었다.

"안 되겠다. 화장실로 가자."

그는 C를 안고 뛰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창문을 열어젖히니 작은 공간이 생겼다.

"아빠 말 잘 들어. 아빠가 들어줄 테니까

밖으로 나가서, 거기 어디냐,

집 앞 공터 있지?

거기에 잠깐 있어. 아빠도 곧 나갈게."

"같이 갈래, 아빠."

"알았어, 먼저 나가면 아빠도 따라갈게."


해가 저물어갔다.

멀리서 119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C는 공터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집 쪽으로 몰려갔다.

C는 집에 가봐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다.

조금 있으면 아빠가 올 거야.

술은 많이 마시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아빠니까.

이젠 홍삼캔디도 잘 먹을 거야.

그 냄새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것 같아.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C는 눈물이 났다.

야속한 시간은 점점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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