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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Feb 04. 2024

나만의 비밀에 대해 써라

2024.2.4.


"아휴, 이번 주제도 만만치 않네."

"그러게 말이야, 차라리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더 쉬워."

20명 남짓 사람들이 모여있는 회의실,

O와 U는 전면 스크린에 떠오른

PPT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주 주제는 '나만의 비밀에 대해 써라'.

나만의 비밀이라, 너무 사적인 거 아냐.

두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다음 주 수업 때까지 써야 하는 글감,

일단 분식집에서 뭘 먹으며 생각해 보자.


그들은 브런치스토리 클래스에 다녔다.

작가가 꿈인 O는 이번에 시작한

3기 코스를 다니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갈 엄두가 안 났다.

궁리 끝에 소꿉친구 U를 끌어들였다.

U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한두 번 같이 다녔는데

이제는 U가 더 적극적으로 갔다.

처음에는 글도 안 써지고 좀이 쑤셨다.

그러다가 이왕 시작한 거

마인드를 좀 바꿔보자 싶었다.

본전 생각도 났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한 페이지는 힘들더라도

하루에 한 줄, 두 줄 노트에 쓰다 보니

뭐랄까, 조금씩 흥이 났다고 할까.

글쓰기가 힘들다는 부정적 생각을

일단 놓아두고 실천으로 나아가는

긍정적 경험을 쌓아가다 보니

U의 하루는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고

차분해진다나 뭐라나.

처음에는 일종의 챌린지 같았는데

이제는 일상의 습관이 된 듯하다.

아무튼 두 사람의 수업도

이제 중반기에 접어들었다.


"퍼즐 맞추기 같아."

U가 떡볶이 국물에 순대를 찍으며 말했다.

"뭐가? 글쓰기가?"

아삭, 김말이 튀김을 오물거리던 O가 물었다.

"글쓰기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조각난 일상의 파편들을 모아

 어떤 큰 그림을 채워나가는 것 같아.

 그 결과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하나로 모이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래, 나도 그런 것 같아.

 그게 기억이 될 수도,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나저나, 나만의 비밀은 뭘로 쓸거니?"

"음, 고민 중이야. 대학교 신입생 때

 고백 한 번 못해본 짝사랑 그 사람,

 비상금으로 주식 투자했다가 싹 날려먹은

 이야기도 있겠고, 뭐 생각하면 많지. 넌?"

"비밀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난 사실 육아 고민이 있어.

 좋은 교육을 시키고는 싶은데

 또 너무 구속하고 싶지는 않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대범한 엄마인 듯

 떠들고 다녔는데 사실 나도 애들 공부를

 바싹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지.

 그런데 이런 걸 남들에게는

 말을 안 해봤는데 그럼 이것도

 비밀이라면 비밀이겠다."


비밀이라.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을 뜻한다.

누구나 말 못 할 비밀 하나쯤은 있겠지.

부끄러워서, 미안해서, 슬퍼서 만든 비밀,

또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비밀도 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지금 경험하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다.

사정과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테니.

내가 만약 5년 전, 10년 전의 나에게

무언가 말해줄 수 있다면 그건 어떤 걸까.

아마도 그건 지금으로부터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하고픈 말일 수도 있겠다.

오래된 미래로부터 온 나만의 비밀은

무엇이 있을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떤 비밀이든지 잘 써봐야겠다.

 비밀이 있다는 건 어쨌든 지나온 삶을

 나름 살아 내어 온 증거일 수도 있으니."

"그래, 우리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잖아.

 어제 어떤 칼럼에서 읽었는데 오늘의 난

 태어났을 때부터 계산하면 제일 늙었지만

 앞으로 살 날로 비교하면 가장 어리니까."

"오, 그러네. 그래 젊은 친구, 이번 글도

 잘 써보자고요."


두 사람은 가게 문을 나섰다.

각자 무슨 비밀을 쓸지

가슴 한 구석에 담아둔

그날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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