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James Jan 30. 2024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024.1.30.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또 떨려온다.

그게 사실일까 했는데

하나씩 돌이켜보면 

틀린 말이 없다. 

모든 상황이 들어맞았다.

지금껏 살아온 대로 

앞으로도 살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벌써 1년 전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이었지.

이른 아침부터 작은 고모가 연락을 했다.

지금 할머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어서 와야 할 것 같다고.

함께 사업하는 부모님은 해외 출장 중이라

집에는 대학생 외동인 N 밖에 없었다. 

N은 미취학 아동일 때 2년 정도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땐 부모님과 살 수 없는 처지랬는데

일 때문이라고, 다른 사정은 듣지 못했다.

할머니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셨다. 

할아버지는 N이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다.

장남은 30세 무렵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20년 동안

별다른 움직임 없이 병석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N은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쳤다.

여기서 400여 Km 떨어진 

바닷가 끝 마을로 가려면

뭐가 제일 빠를까. 

운전 못하는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버스나 기차는 늦을 것 같아. 

N은 택시를 탔다. 

지금 비용은 중요한 게 아니야.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차가 있을까 했는데 

10여분 만에 배차를 받았다. 다행이군. 

제발 가는 동안 별다른 말을 안 걸었으면

했는데 딱 그런 운전자가 차를 몰았다. 

2번의 휴게소를 빼면 쉼 없이 달려 

아련함 속 익숙한 그 집에 도착했다. 

복숭아 솜털 색을 닮은 추억이

바람결에 흩어져 갔다. 


안방에는 할머니가 작은 침대 위에 

덜 마른 이불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작은 고모와 고모부가 나란히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두 분이 할머니와 

같은 동네에 살며 어르신을 보살펴

참 다행이었다. 

N이 할머니에게 다가서자 고모 내외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렇게 잠깐 할머니와 단둘이 있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N의 눈앞에는 

한 세기를 지나온 육신이 가지런했다.

기력이 다한 눈꺼풀 파르르 떨렸다.

숨 쉬기가 힘겨워지는 듯했다.

100세 가까이 잔병치레 없이 사셨는데

세월을 이길 수는 없나 보다. 

병원에서 어쩔 수 없이 고인의 길로 

떠나보내는 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N은 할머니 손을 잡아드렸다. 

어릴 적 키워주실 땐 

제법 통통한 손이었던 것 같은데

뼈마디만 남도록 바싹 말라버렸네. 

N의 온기가 닿자 할머니는

눈을 겨우 치켜뜨고 입술을 옴짝달싹했다.

"네, 저 여기 있어요."

N은 얼굴을 할머니 입에 가까이 붙였다.

"우리 손주, 내가 키웠던 귀한 녀석. 

이렇게 잘 커서 할미는 고맙기만 해." 

"할머니..." N은 말을 잇지 못했다. 

슬픔보다 더 큰 공포가 가슴을 짓눌렀다. 

몇 마디 나누지 못하고 이제 멀리 

떠나보내드려야 할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알고 있을지 몰라도... 

 너는 내 친손주는 아니란다."

"네? 그게 무슨..."

이게 무슨 말일까. 놀랍고 당황스러워 

애통함이 넋을 잃었다. 

하지만 N은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게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중에야 고모로부터 상황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경우일까.

부모님은 왜 진작 말해주지 않은 걸까.

그렇게 그날은 해가 저물어 버렸다. 

짧고도 긴 하루가 끝났다.

이전 20화 '나는 이역만리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