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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에서 따옴

by 피어라


“다들 준비됐어?”

안전벨트를 매고 좌석을 조정하며 내가 말했다. 간만에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탄다고 긴장을 했는지 뒷좌석의 두 아들이 허리를 바짝 세워 앉는다. 남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손으로 손잡이를 꼭 붙들고 있었으면서 짐짓 여유 있는 체 하며 시트를 뒤로 넘긴다. 아들이 긴장을 하거나 말거나, 남편이 불안해 하거나 말거나, 나는 신나게 출발할 준비를 한다. 시동을 켜고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조정한 다음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편안하게 허리를 기대고 오른 발을 옮겨 부드럽게 액셀을 밟는다. 출발이다.


사실 오래도록 신분증 역할만 하던 내 운전면허증이 제 역할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는다. 오늘도 남편은 칼국수에 전 한 접시 추가해서 막걸리 마실 생각에 운전대를 넘긴 것이지 나를 믿어서 조수석을 자청한 것은 아니다. 점심으로 칼국수 한 그릇 하자고 대부도까지 나들이라니, 평소라면 멀리까지 나갈 생각을 안 하지만 오늘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새로 맡은 남편의 디자인 작업이 잘 끝났기 때문이다. 기쁘기도 하고 축하도 하고 싶어 잠깐의 나들이를 계획했다.


코로나 펜데믹이 막 시작되던 무렵, 남편이 다니던 디자인 회사가 경영악화로 쫄딱 망했다. 친구가 대표를 맡고 남편이 실무를 챙기며 시작한 회사였는데, 삼년고개에서 다 같이 미끄러지기라도 했는지, 삼년을 못 버티고 무너져버렸다. 게다가 무슨 대단한 우정이라고 퇴직금도 제대로 정산하지 않았다. 그 후로 남편은 오래도록 일을 하지 못했다. ‘못했다’인지 ‘안했다’인지 진실은 남편만 알겠지만, 그때부터 한동안 나 혼자 외벌이를 해야 했다. 한창 애들한테 돈이 들어갈 시기에 돈에 쪼들리며 빠듯하게 살았다. 돈도 돈이지만 종일 집 안에 있는 남편을 보는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나보다 남편이 더 힘들거라 생각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했다. 천만다행으로 얼마 전부터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꼬박꼬박 출근하고 정기적으로 급여가 들어온다. 사실 남들 다 일할 젊은 나이에 놀았으니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일해야 공평하다고 출근하는 남편 등에 대고 잔소리를 더한다. 계속해서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벌어오라며 매일 채찍질하는 재미로 아침이 즐겁다.


시화공장단지를 지나려는데 도로연수중인 차가 오른쪽에서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려고 한다. 속도를 높여 얼른 끼어들어야 하는데 한 번에 들어오지 못하고 주저한다. 분명 달려오는 나를 보며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겠지. 속도를 줄이고 앞 차와 간격을 벌려 차가 들어올 수 있게 양보를 했다. 무사히 내 앞으로 들어오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차선을 물고 달린다. 저러다 옆자리에 앉은 강사한테 잔소리를 들을텐데. 생각해보면 깜빡이를 켜고도 끼어들지 못해 계속 직진하던 초보시절이 엊그제 같다.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둔 할머니네 칼국수집은 대부도 초입에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다행히 주차장은 자리가 충분했다. 수월하게 주차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건만 아이들은 앉자마자 핸드폰부터 확인하고 남편은 음식이 나오기 전에 막걸리부터 따랐다. 칼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한 병을 다 비울 기세다. 다행히 세 번째 잔을 따를 때 음식이 나왔다.


군대 제대하고 복학한 큰 아이와 교대로 이제 군대 입대를 위해 휴학하려는 작은 아이가 번갈아 가며 칼국수를 떠다 먹는다. 중학생 무렵 급격히 성장하며 몸무게가 100킬로그램 육박하던 큰 아이는 대학에 합격하자마자 헬스를 다니며 운동을 시작했다. 수험생 시절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하더니 대학 입학 후에도 술도 안 마시며 철저히 관리한다. 형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빠가 마시는 막걸리를 탐내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한 잔 받아 넙죽 마셨다. 술을 엄청 좋아하는걸 보면 아무래도 집안 내력이지 싶다. 법적인 성인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마셔보더니 술자리 재미가 들렸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술 마시느라 바쁘다. 엄마 하고도 먹어주면 좋을 텐데 자신의 간은 친구들과 먹는 술을 해독해야한다며 나와의 술자리는 매번 거절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해서 냉장고에 사다 둔 숙취해소제는 내가 몰래 다 마셔버렸다.


칼국수집을 나와 잠깐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남편과 함께 가까운 모래사장에 엉덩이를 붙였다. 방아머리 해변은 한 여름이 아니면 늘 쓸쓸한 분위기긴 하지만 갈매기만은 언제나 붐빈다. 여기저기서 연인들이 과자를 손에 들고 팔을 뻗으면 경력직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능수능란하게 사냥한다. 요란하고 집요하게 과자를 향해 몰려드는 갈매기들. 공중으로 던져지는 새우과자가 끊어지면 거짓말처럼 다 흩어질 갈매기들. 봉지 안의 새우과자가 다 떨어지고 화려한 갈매기쇼도 끝이 났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다. 먼저 일어서며 남편에게 말했다.

“막걸리 드신 분은 옆에서 편히 주무시면서 가세요. 제가 모셔갈께요.”

얼른 아들 녀석들이 면허를 따서 모시고 다니면 좋겠다고 말하며 남편이 내 엉덩이에 붙은 모래를 털어주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 늦게 배운 운전에 재미 들려 평일에도 핸들 잡고 싶어 근질거리는데.

“차라리 내가 못 미덥다고 솔직히 말하시지? 얼른 와요, 바로 출발할거야.”


차에 올라 벨트를 매고 창문부터 내렸다. 밀려들어오는 습하고 비린 공기를 가슴이 부풀도록 크게 들이마셔 본다. 이것저것 천천히 시간을 들여 확인을 해보고 시동을 켠다. 브레이크도, 기어도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 내비게이션도 계기판도 정상으로 작동한다. 이제 이 차는 내 의지대로 움직여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꼭 맞은 조각들로 쌓아올린 블록처럼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은 오후, 햇살이 가볍게 핸들 위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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