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르지만 올해의 책을 정리해보련다. 연말연시에 만남도 모임도 없는 은둔형 인간인지라 연말에 바쁠까봐 미리 하려는 건 아니고, 순전히 재밌게 읽은 책들이 많아서 얼른 꼽아보고 싶은 조급함 탓이다. 그만큼 2022년 한 해 동안 마음에 남은 책이 많았다. 전반기에는 슬렁슬렁 놀면서 지내서 별로 읽은 책이 없고전부 하반기에 읽은 책들인걸 감안하면 올해 정말 재밌는 책을 많이 봤다는 얘기가 된다. 하반기에 책 사는 양도 부쩍 늘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추천하고 싶은 책을 꼽아봤다.
소설, 비소설, 순위 상관없이 세 권을 차례로 적어본다.
1. 눈감지 마라 - 이기호
2.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3. 시와 산책
이미지는 예스24에서 가져옴.
이기호 작가의 [눈감지 마라]는 소설 자체로도 인상적이었지만, 짧은 소설이라는 형식,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를 알게된 계기가 되어주어 더 고마운 책이라 주저없이 꼽았다. 이전에 적어둔 글이 있어 붙여본다.
여기저기서 화제였던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조금만 검색해도 리뷰가 쏟아질만큼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책이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아버지를 사랑해서, 그냥 아버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저려오는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대사를 관통하는 개인의 삶과 시대의 아픔에 울다가 웃으며 읽어내려갔다. 그러고보니 소설 두 작품 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책이다. 내 취향탓인가 싶기도 하다.
한정원의 [시와 산책]은 읽고나서 절친에게 선물해준 책이다. 시 한 편에 담긴 내면의 이야기를 적어낸 에세이로, 시를 읽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깨끗하고 맑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기뻤다. 시를 사랑하는 산책자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펼쳐지면서 책을 읽어나갈수록 시의 숲을 산책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풍광을 느끼고 자연과 대화하고 시를 만끽하는 순간들이 읽는 내내 독자들의 마음에 섬세한 파형을 그려낸다.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만드는 '말들의 흐름'이라는 시리즈 에세이라는 점도 신선하고 흥미롭다. 다른 시리즈들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술과 농담은 꼭 읽어보려고 주문해둔 상태다. (시리즈 중에 시와 산책이 가장 잘 나가는 듯. 20쇄 찍었다고 한다.)
올해 유난히 발견한 작가와 출판사, 책들이 많았다. 독서의 영토를 넓힐 수 있었던 여러 계기들과 인연들에 감사하다. 앞으로도 이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며 꾸준히 책을 읽어 나가기를 소망한다. 그럴 때 또 많은 만남을 만들수 있겠지. 한 살 더 먹는 것은 반갑지 않아도 새로운 일 년이 시작되는 것을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 아닐까.
PS ㅡ 아직 2022년이 한달하고 열흘 남았다. 그 사이에 위의 세 책을 능가할 감동을 주는 책을 만난다면 어떨까? 아쉬울까, 설렐까? 혹시 그런 인연을 만난다면 그때는 추가를 해야지. 열심히 읽으며 연말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