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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28. 2022

식집사  시중기

귀하신 분들 수발드느라 허리 휩니다.

식집사는 주말에 바쁘다. 거실에서 목말라하는 아이들을 욕실로 옮겨 듬뿍 물샤워도 시켜드리고 일주일간 잎에 쌓인 먼지도 닦아드려야한다. 베란다에 계신 분들은 시든 이파리를 때낸 다음 충분히 분무해주고 영양제도 뿌려준다. 이것 말고도 신경써서 챙겨야할 일이 많다. 날씨가 급변한다는 예보가 있는 주말이면 더 바쁘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한동안 따뜻해서 걱정이 될 정도의 늦가을이었는데, 다음 주 부터는 본격적으로 추워진단다.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느긋하게 쉬고 있을 틈이 없다. 창문을 활짝 열고 남편과 함께 본격적으로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먼저 제라늄과 트리안의 지저분한 잎과 마른 잎을 정리한다. 물러진 가지는 잘라내고 멋대로 자란 고무나무 가지를 빵끈으로 묶어 수형을 잡아주었다. 몬스테라도 수태봉을 꽂아 늘어진 잎들을 예쁘게 정리했다. 시들시들한 안스리움과 스노우사파이어는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옮겨주고, 셀렘과 금전수에 낀 깍지벌레는 줄기를 훑으며 다 잡아낸다. 휘어지는 디펜바키아도 지지대를 세워 잘 고정시켜주고 다육이들도 한쪽에 잘 배치해주었다.


물때 낀 화분 받침대들은 솔로 박박 닦고 더러워진 화분들도 일일이 닦아낸다. 디시디아와 러브체인이 걸려있는 행거 위도 놓치지 않는다.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창틈에 낀 먼지도 쓸어낸다. 구석에 방치해뒀던 빈 화분의 흙도 치우고 잎과 흙이 쌓인 배수구까지 싹 비워낸다.


마지막으로 물을 뿌려가며 깨끗하게 다 치우고 나니 허리가 욱씬거리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손을 댄 김에 화분들 위치도 새롭게 바꿔가며 변화를 만들어 본다. 여기저기 옮겨가며 새로 자리를 잡고 나자 벌써 해가 질 시간이었다. 텃밭을 가꾸면 먹을거라도 생기지, 나올 것 없는 화초를 소중한 주말 반나절을 들여가며 붙들고 있는 이유가 뭘까? 나처럼 일하는 걸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이.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오후시간을 다 들여 식집사의 소임을 다해 시중을 마무리 했다. 정리된 베란다와 거실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다는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만족스럽다. 물기가 말라가는 바닥, 물방울이 맺혀있는 초록 잎, 선명한 잎색과 갈색 줄기의 조화, 불규칙해 보이지만 일정한 규칙이 있는 잎과 가지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수고할만큼의 가치가 있었노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정리를 마치고 바라볼 때의 여유와 평화로움이 식물시중을 들게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러니 황금같은 주말 오후를 몇 시간이도 움직이며 일하게 되는 것이겠지.


사실 오늘 조금 무리를 했는지 저녁을 먹고 치우는데 피로가 몰려왔다. 노년에는 식물돌보기도 체력과 허리 때문에 못한다는게 실감이 난다. 겨우 손바닥 만한 베란다 정원을 가꾸면서도 이리 엄살인데, 정원이나 마당딸린 집은 꿈도 못 꿀것 같다. 예쁜 식물을 볼때마다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커지지만 욕심부리지 말고 내 깜냥에 맞는 만큼만 돌보고 있다. 그게 오래오래 식집사로 남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 흘린 땀만큼 우리집 초록이들이 건조하고 추워지는 날씨에도 잘 버티고 잘 지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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